어른의 영화가 되다

▲ 영화 `비포 미드나잇’ 한 장면.
 1994년부터 시작된 비포시리즈는 9년마다 관객들을 찾아오고 있는 연작이다. 이 시리즈의 콘셉트는 복잡하지 않다.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가 유럽의 특정 도시나 지역을 유영하며 끝없이 대화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 하루를 넘기지 않으면서.

 더 놀라운 것은, 심심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이 시리즈의 스타일이 매니아들을 거느릴 정도의 경지를 매번 입증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와 프랑스 파리, 그리고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를 무대로 하는 18년 동안의 여정이, 각 영화의 하루를 통해 압축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점이 실로 놀랍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제시와 셀린느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영화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또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비포 미드나잇’은 스물네 살 무렵 비엔나에서 만날 수 있었던 미묘한 설렘이나, 서른세 살 시절 파리에서 전해지는 사랑의 감정보다는, 40대 초반을 살면서 마주해야 하는 삶의 신산함에 집중한다.

 영화는 제시가 자신의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헨리를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 보내는 이별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제시는 셀린느와 쌍둥이 딸이 타고 있는 승용차를 몰아 나간다. 제시는 전처와 이혼하고 셀린느와 재혼하여 두 딸을 낳은 것이다. 이렇게 영화를 열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갈등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서두에서 명확히 한 것이다.

 복잡한 머리 속을 정리하지 못하고 떠나온 여행 이어서였을까.

 영화는 제시 가족이 여행하는 그리스 남부지역의 풍광을 무심하게 대하고, 쌍둥이 딸들에게 구경시켜야 할 그리스의 유적들 역시 지나쳐 버린다. 이렇듯 ‘비포 미드나잇’은 그리스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점은 전작들이 각 도시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낸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찬란한 빛도 쉬이 다가오지 않는 법이다.

 ‘비포 미드나잇’은 제시와 셀린느의 답답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영화의 스타일에 있어서도 나눠찍기보다는 오랫동안 응시한다. 영화초반에 제시와 셀린느가 차안에서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장면은 앞 유리창을 걸치고 장시간 촬영했고, 오솔길 대화 신 역시 길게 찍었다. 그들은 분명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20, 30대 때의 생기발랄한 언어 대신에 조금 더 사변적이거나 현실의 고민이 묻어나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제 낭만보다는 주변을 살펴야 하는 사회인이 된 것이다.

 하여 이들은 외부와의 관계에서 허우적거리며, 급기야 상대에게 가시 돋친 말을 뱉어내고야 마는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은 여느 부부들처럼 아이들 양육문제, 전처와의 갈등, 심지어는 예전의 부정까지 문제 삼으며 언쟁을 벌이는 장삼이사가 되어 버린다.

 바로 이 순간 ‘비포 미드나잇’은 달달한 밀어를 전했던 전작들과 확실한 선을 그으며 어른의 영화가 되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그리고 리차드 링클레이터는 오늘과 같은 선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비포 미드나잇’이 영리한 것은, 비루한 현실을 보여주었다고 실망할 관객들을 위해 달콤한 결말을 서비스하는 것 역시 빼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텔방에서 섹스를 하려다말고 대판 싸웠던 두 사람은 해변의 카페에서 한밤중의 화해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수작 역시 로맨틱한 편지와 죽여주는 말발이라는 점에서 비포시리즈는 천상 ‘말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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