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뚝심있게 밀어붙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영화는 ‘이야기산업’이다. 관객들이 스타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 같지만, 견고한 이야기가 뒷받침 되었을 때라야 스타도 빛이 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우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 환영받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일찍이 시나리오작가로 명성을 얻었고, 조선시대의 성풍속도를 발랄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음란서생’은 그에게 ‘영화감독’이라는 직함을 선물해 주었다. 이어서 내놓은 ‘방자전’ 역시 춘향전을 전복시키는 이야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인간중독’은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이 되는 셈인데, 이번에 만들어낸 이야기의 비밀은 기존의 영화들을 예습하고 복습한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에 탄생되었다는 점이다. 감독은 ‘사랑’을 말하기 위해 수많은 사랑영화들을 복기했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멜로영화 중 ‘인간중독’에 가장 큰 자양분이 되어 준 영화는, 이안 감독의 ‘색, 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의 쾌락에 중독되어 대의(大義)를 져버린 인물이 등장하는 ‘색, 계’의 이야기에서, 바로 그 ‘육체의 쾌락에 중독’된 인물을 되살렸다는 말이다. 하여 아내가 있는 김진평(송승헌)은 이웃집 유부녀인 종가흔(임지연)과 몸을 섞은 후에, 그녀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섹스가 분리되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색, 계’에서의 섹스신의 농도가 짙은 것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고, ‘인간중독’의 수위가 높은 성애묘사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사랑영화들을 참고해서 영화의 뼈대를 새우긴 했지만, 김대우 감독의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는 녹슬지 않았다. 특히, 장교부인들의 뒷담화 자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다들을 통해, 영화를 진행시키고 교통 정리해 내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아줌마들이 쏟아내는 수없이 많은 말들을 통해 그들의 욕망과 세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탁월하다. 이렇게 ‘인간중독’은, 영화 속에 수다쟁이들을 배치하여 관객들에게 보다 더 친절하게 이야기를 전송하고 있다고 하겠다.

 정교한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을 기본으로, 감독은 영화형식에 있어서도 욕심을 내며 자신의 영역을 넓힌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69년 여름이다. 이를 반영하듯, 영화는 느린 호흡으로 전개된다. 이는 감독이 시대의 공기를 포착하고 인물의 내면을 탐색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가쁜 호흡으로 전개되는 요즘 영화들과 차별화한, 감독의 영화스타일에 대한 자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와 형식에 있어서 공을 들인 이 영화가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면, 그것은 주인공을 맡은 연기자에게서 중요한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연기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관사에서 파티가 열리고 있는 자리에서, 김진평은 종가흔이 자신에게서 떠나가려 하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솔직한 속마음을 발설한다. 말 그대로 클라이맥스다.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던져 버리는 바로 그 순간에 필요한 연기는 감정이 제어되지 않는 내면의 폭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송승헌의 연기는 서운한 감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독은 반전을 거듭하는 촘촘한 이야기솜씨로 이를 조금은 상쇄시킨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관객들을 영화의 종착역까지 안내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 글자의 한글을 공개한다. ‘내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감독은 바로 이 세 글자를 보여주기 위해 1969년 여름을 통과한 김진평과 종가흔을 창조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중독’은 ‘사랑’을 뚝심 있게 밀어 붙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인간중독’은 ‘사랑’에 목숨 거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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