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의 머리를 가격하는 주제의식

▲ 영화 ‘조커’.
 DC코믹스의 ‘배트맨’이 탄생한 것은 1940년이었다. 이때 이후로 ‘배트맨’은 만화와 그래픽노블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배트맨’이 세계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8)이 전 세계적 흥행을 거두면서 부터다. 이때 잭 니콜슨이 연기했던 조커는 강렬했다. 마이클 키튼이 연기했던 배트맨보다 그 존재감이 더 빛날 정도였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2008, 크리스토퍼 놀란)에서도 조커는 대단했다.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보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의 존재감이 확실했다. 그러니까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는 관객들에게 ‘조커’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히어로 캐릭터 못지않은 빌런(악역)의 존재감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그동안 배트맨을 농락하고 고담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조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설명이 부족했다. DC코믹스의 마니아들 정도가 화학약품 때문에 악의 화신이 되었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보는 앞에서 강도에 의해 부모가 살해당한 후, 자신의 고통을 자양분삼아 정의의 수호자가 된 배트맨의 탄생 배경에 비한다면, 조커가 악의 화신이 된 이유는 설명이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조커’는 조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조커가 악의 대변자가 되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우선,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과 조커의 탄생을 연결시켜낸 시나리오의 치밀함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토드 필립스의 연출력과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도 이를 뒷받침했다. 특히, 호아킨 피닉스의 메소드 연기는 관객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를 잘했다고 칭찬하고 끝낼 영화가 아니다. ‘조커’는 품고 있는 주제의식에 있어서 관객들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고담시가 배경이긴 하지만, 이 영화 속의 상황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대도시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신자유주의가 작동되고 있는 현재의 세계는 빈부격차가 가속화하고 있고, 불평등이 만연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상호간의 공감능력 또한 떨어지고 있다.
영화 ‘조커’.|||||

 여튼, 사람들끼리의 연대가 실종된 고담시에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광대복장을 하고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쉽지 않고, 병든 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장차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것이 꿈이지만,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이 터져 나오는 ‘병적 웃음 증세’를 앓고 있는 것은 치명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서에게 총 한 자루가 주어진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백인 상류층 사내 3명을 살해하게 된다. 한데 살해된 자들은 고담시의 시장이 되고자하는 토마스 웨인의 부하직원들이다. 시장이 되겠다는 토마스 웨인은 이 사태를 쉽게 생각한다. 못난이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살인을 한 것이라고 일축하고, 피에로 얼굴의 사내로 대변되는 빈자들에게 의무를 강조하고 책임의식이 부족하다고 까 내린다. 이에 자신들을 피에로 얼굴의 사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제적 불평등으로 불만이 가득 차 있던 빈자들은, 피에로 가면을 쓰고 거리로 몰려나와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커’는 아서(조커)로 대변되는 주변부 인생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부패와 부조리가 만연한 세상을 초토화시키는 영화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자들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정치와 미디어를 이용해 대중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하지만, 힘없는 대중들은 이를 알면서도 그동안 묵인해 왔고,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그런 점에서 영화와 같이 헐벗은 민중들이 도시를 불태우는 모습은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일지도 모른다.

 ‘조커’가 대단한 것은, 불길한 미래를 매우 현실감 있게 제시하며 관객들을 두렵게 한다는 점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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