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병렬로 흐른다

▲ 영화 ‘심야식당’ 중.

 - 2015년 / 120분 / 감독 : 마츠오카 조지 / 출연 : 코바야시 카오루(마스터), 타카오카 사키(다마코 역), 타베 미카코(미치루 역), 츠츠이 미치타카(겐조 역) 등

 

 영화는 이야기와 음식이 세트가 되어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된다. 에피타이저는 계란말이다. 쉽고, 단순하면서도 알찬 음식이다. 가게의 단골 모두가 즐기는 메뉴다. 요리 기교가 그다지 필요치 않은 음식이다. 사람의 삶도 실은 굳이 복잡한 기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첫 음식은 ‘나폴리탄’이다. ‘토마토 스파게티’라 할 수 있다. 부유한 노인의 후처였던 다마코에게는 계급의 의미가 담긴 음식이다. 다마코는 유산이 없는 처지에서 하지메와 나폴리탄을 함께 즐기며 미래를 함께 하기로 하지만, 유산을 갖게 된 이후에는 태도를 바꾸고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하지메를 버린다. 다마코는 유산으로 일수놀이를 한다. ‘나폴리탄’ 아니라도 음식은 계급을 상징한다. 대통령 출마자들이 시장을 찾아 국밥을 먹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두 번째 음식과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밥’과 시골에서 올라온 미치루다. 미치루의 ‘마밥’은 생존하기 위한 ‘치욕’이자, 자신의 삶을 번듯하게 꾸려가는 인간으로서의 ‘긍지’라는 의미가 담긴다. 음식은 인간에게 있어서 ‘치욕’이자, ‘긍지’이다.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씹어야 할 때, 그 음식은 ‘치욕’이자 ‘수치’로 다가온다. 폭압의 세월이나, 지독한 가난 속에서 인간은 한 모금의 물을 위해, 한 조각의 빵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몸을 판다. 그때의 음식은 지워버리고 싶은 ‘치욕’이다. 오로지 생명을 유지하고 싶은 간절한 욕망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식당을 하자는 남자에게 속아 가진 돈을 모두 뜯기고, 공원에서 물로 배를 채우던 미치루가 심야식당에서 돈 한 푼 없이 시켜먹던 음식도 ‘치욕’과 ‘수치’를 담고 있었다. 음식은 어느 때보다 맛이 있었겠지만, 그 음식을 넘기며 미치루는 부끄러움을 함께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미치루는 정작 자신이 시켰던 ‘마밥’을 먹지 못했다. 달아나야 했기 때문이다. 가게를 떠나던 날 마스터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주겠다고 했을 때 미치루는 ‘마밥’을 청한다. ‘마밥’은 이제 도망가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미치루는 마스터를 사랑하는 요정 사장의 가게에서 요리사로 자리를 잡고 난 후에 마스터와 단골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온다. 마스터가 다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주겠다고 했을 때 미치루는 또다시 ‘마밥’을 청한다. 이제 그녀는 ‘마밥’을 편안한 마음을 갖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 음식의 주인공은 카레라이스와 켄조다. 카레라이스는 치유와 극복의 상징이다. 카레라이스는 후쿠오카에서 지진으로 인해 부인을 잃은 켄조가 죽음 같은 절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에게 삶의 의지를 갖게 해 준 이케미가 만들어 준 음식이었다. 켄조는 카레라이스를 계기로 자신의 고통을 잊으려는 집착을 시작하지만, 또한 카레라이스를 통해 자신의 집착을 떨쳐낸다.

 영화는 식당의 주인인 마스터의 “하루가 저물고 모두가 귀가할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영업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사람들은 가게를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메뉴는 이게 전부. 무슨 음식이든 주문이 들어오면 가능한 건 만드는 게 영업방침이다. 손님이 있냐고? 생각보다 많아!”라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심야식당’은 다른 모든 이들이 잠들어 있을 시간에 여는 식당이다. 하던 일이 늦게까지 이어져 식당을 찾은 이들도 있겠지만, 단골이라면 늦은 밤까지 일이 이루어지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다. 시간만 다를 뿐, 심야식당을 찾는 단골들은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는 이들과 똑같은 의미의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다. 편견을 걷어내고 나면, 시간을 걷어내고 나면 사람의 모습은 모두 똑같다. 어느 시간대에 깨어있느냐는 삶의 정체성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심야식당은 특정 시간에 의지하고 있고, 그 식당을 특정 시간의 사람들이 의지하고 있지만, 시간은 언제나 병렬로 흐른다. 내가 이곳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누군가는 잠을 자고 있거나, 누군가는 갱도에 들어가 석탄을 캔다. 사람의 얘기는 그래서 언제나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활약하는 그 시간에 다른 이들은 죽어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도 다른 많은 이들이 잠시 짬을 내어 박수를 쳐주고 손은 흔들어주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영원히 한 자리에서 혼을 놓고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잠시일 뿐이다. 아주 드물게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는 일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결국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자신의 시간은 남아 있지 않으니까. 스타가 아닌 평범한 이들은 단지 박수를 쳐주고 손을 흔들어주는 이들이 적을 뿐이다.

천세진 <시인>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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