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희생적인 동물이 무엇일까? 개, 소, 양, 닭…. 물론 그들도 인간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건 맞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그러나 돼지만은 오로지 그 목적으로 키워진다. 돼지의 평균수명이 20년 정도인데, 야생종 몇 종을 제외하곤 수명이 채 2년을 넘기가 힘든 게 지금 그들 일족의 슬픈 자화상이다.

 돼지는 흔히 우둔한 동물로 치부된다. 돼지는 주위에 동료가 죽어도(돼지농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개의치 않고 먹는 일에만 충실 한다. 앞을 잡으면 죽어라고 뒤로 가려하고 꼬리를 잡으면 죽어라 앞으로 가려하는 이상한 직진 본능이 있다. 여러 마리를 좁은 곳에 두면 서로 꼬리를 뜯어먹는 ‘카니발리즘(동족상해)’ 현상 같은 것도 발생한다. 이런 것을 보면서 인간들은 돼지들을 더욱 ‘바보’라고 놀려댄다. 그러나 한번쯤, 전쟁 중에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집돼지들의 운명도 이 포로들처럼 반항하면 곧 죽음이다. 그러니 바보같이 보이는 비정상적인 유전자를 가진 개체만이 적자로 살아남아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자기 종족과 짧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 사람들의 비아냥 꺼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생명 보존 적응 능력이 ‘바보’스러워“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의 혁명을 주도하는 지혜로운 존재로서 동물이, 바로 돼지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의 탐욕에 의해 그 사회를 붕괴시키기도 한다. 그럼 조지 오웰은 왜 하필 돼지를 동물 중에 으뜸으로 세웠을까? 아마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농장에서 가장 억압받는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돼지와 돼지의 영리함을 익히 알고 쓴 저자의 경험이나 지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많은 동물학자들은 돼지를 아주 영리한 동물로 분류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해외토픽’에서도 수레 끄는 돼지, 버섯 찾는 돼지, 아이 키우는 돼지 등 수많은 돼지들의 영리한 활약상이 펼쳐진다. 강원도에서 잠깐 목장생활을 할 때 10마리 가량의 멧돼지 무리와 맞닥뜨린 적이 있다. 더구나 철없는 진돗개 두 마리 까지 동행한 상태였다. 나는 한사코 몸을 숨기려 했으나 그 개들은 본능적으로 기어이 멧돼지들을 쫓아 올라갔다. 그런데 멧돼지들은 충분히 저항할 수 있는 데도, 이 개들의 추적을 피해 한참을 언덕위로 달아났다. 그리고 중턱쯤에서 멈추어 서서 개들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 개들이 꽁무니를 뺐다. 허허벌판에 서서 혹시 덤벼들면 어쩌나 하는 내 생각은 결국 기우에 불과했고 멧돼지들은 제 갈 길을 다시 갔다. 그 멧돼지들의 행동은 일단 후퇴, 상황 파악, 재정비, 최소한의 반격, 그런 계산된 전략처럼 보였다. 그건 손자병법에 나온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 싸움을 하지 않고 이기기 같은 최상의 전략들이었다.

 돼지는 인간과는 여러모로 비슷하다. 사람의 남은 음식물, 심지어 똥까지도 즐겨먹듯, 식성이라든지 체구도 비슷하다. 체구 뿐 아니라 내장기관의 구조나 크기까지 거의 비슷하다. 그러니 인간 대체장기로 돼지의 장기들을 쓰려는 생명공학 연구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과 다른 것은 2~20마리까지 낳는 다산성이고, 짧은 임신 기간(114일)과 성장기간이다. 이도 물론 생물학적 실험을 위한 최적의 조건들이다. 미래에는 분명 인간의 장기를 돼지로 대처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날이 와도 여전히 돼지는 그저 돼지로 밖에 취급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기 몸에 다시 생명을 돌려준 대체장기를 돼지 거라고 투덜거리는 이기적인 인간들만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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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고사 머리…인간의 본래 마음은?
 
 그렇지만 이 못된 인간의 무의식 속에도 분명 돼지에 대한 가책이 일말은 남아 있다. 돼지꿈은 무조건 길몽이고, 웃는 돼지머리로 제사를 지내야 하고, 여전히 저금통은 돼지 저금통이 가장 선호된다. 여러 나라의 건국 신화에도 어김없이 돼지가 등장한다. 서유기의 주인공, 십이지신 중의 하나도 돼지이다. 아무튼 돼지와 관련해서 부정하거나 재수 없는 상징은 거의 발견 할 수 없다. 그 만큼 돼지에 대한 인간 내면의 감정은 ‘고마움’인 것이다. 돼지 역시 먹여주고 재워주는 인간들에게 자신들이 어느 정도 희생해야 되는 줄은 안다. 그러나 순종적인 가축에 대해 너무 극단(육류생산 공장)까지 치달아버린 현대사회에서는 우린 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 만큼 돼지가 해 주었으면 최소한 돼지답게 흙 위에서 마음껏 뒹굴다가 죽을 권리(웰 다잉)정도는 보장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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