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승객은 나날이 줄고…

▲ 광주 송정역 구내.
 지난달 호남선의 무안역과 몽탄역, 임성리역이 무인화되고 경전선의 화순군 이양역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에 해당지역 주민들과 일부 정치권이 반대의 목소리를 냈고 운영자인 코레일이 일부 역에 대한 무인화 결정을 철회할 것이라는 뒷얘기가 들렸다. 그러나 무인화 결정이 일시 철회됐다고 해도 점차 눈에 띄게 한산해져가는 정거장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이 써늘해진다.

 

 1913년10월, 광주의 첫 철도

 광주에 처음 철도가 들어온 것은 1913년 10월이었다. 지금은 광주송정역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당시 송정리역이라 불렸던 곳에 처음 열차가 정차했다. 당시 호남선은 완전 개통 전이었고 열차는 종점인 목포역을 출발해 송정리역까지 190km만 운행했다.

 호남선 철도가 전면 개통된 것은 그 이듬해인 1914년 1월이었다. 이로써 대전을 기점으로 하고 목포를 종점으로 하는 261km의 호남선이 개통됐다. 당시 노령산맥 이남의 전남지역에는 호남본선을 따라 14개의 정거장이 생겼고 그 가운데 행정구역상 광주에는 임곡역과 송정리역 등 2개의 역이 있었다.

 그 뒤 호남선을 따라 1922년에는 송정리역에서 광주역을 잇는 22km의 전남선이 분기되어 나갔고, 다시 1930년에는 광주역에서 여수를 잇는 160km의 경전서부선이 생겨났다. 또한 1927년 함평군에서는 학교역과 함평 읍내 사이 6km를 잇는 기동차 노선이 등장해 1960년까지 운영되기도 했다.

 물론 호남본선에도 많은 정거장이 생겨났다. 1980년대만 해도 노령산맥 이남에서만 호남선에는 22개의 역이 있었다. 그 후에 이들 역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런 변화 중 하나는 역의 이름이 바뀐 경우다. 1924년 삼향역은 일로역으로, 장성군 북이면에 있는 사거리역은 1967년 지금처럼 백양사역으로 개칭했으며, 1985년 무안군 몽탄면의 사창역은 무안역으로, 2001년 학교역은 함평역으로 바뀌었다. 2009년에는 송정리역도 광주송정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부 역들은 역의 위치도 바뀌었다. 주로 1990년대와 2000년대 호남선 복선화 과정에서 철도 노선이 바뀌면서 역 위치도 부득이 변경된 결과였다. 그 가운데 장성 북일면에 있는 신흥리역과 함평군 학교면의 학교역은 원래의 역 자리를 보여주는 흔적을 남겼는데 급수탑이 그것이다. 멀리서 보면 언뜻 경주에 있는 첨성대처럼 보이는 이 구조물은 증기기관차 시절에 증기발생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었다고 한다. 신흥리역은 1987년에, 학교역은 1982년에 각각 지금의 위치로 역 건물의 위치를 변경했고 이들 역의 유산인 급수탑은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상태다.

 줄어가는 호남선 정거장

 그런데 호남선 철도의 가장 큰 변화라면 정거장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개통 당시 노령산맥 이남에 14개였던 정거장은 한때 22개로 늘어나는가 싶었지만 현재 정거장의 면모를 갖춘 것은 17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여객 감소로 무인화, 즉 사실상 열차가 정차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평소에는 역 건물에 자물쇠를 채워놓은 곳도 적지 않다.

 지난달 호남선철도의 운영자인 코레일이 호남선의 무안역, 몽탄역, 임성리역과 경전선의 이양역을 무인화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에 해당지역 주민들과 일부 정치권의 반대로 그 가운데 일부는 무인화 결정을 유보하기로 했다는 뒷얘기가 들린다. 그러나 무인화 결정을 유보했다고 해서 평소 한적하기만 한 시골 정거장의 적막감을 지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실제로 지난 몇 달 동안 필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호남선과 경전선의 몇몇 시골역을 다녀봤는데 사정은 비슷했다. 많은 역들이 10여 년 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그 면모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특히 무인화 논란이 있었던 무안역이나 몽탄역의 역 건물은 꽤나 현대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반면에 경전선의 남평역, 능주역, 명봉역 등은 이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정거장에는 승객이 없었다. 도중에 만난 어느 역무원은 “이런 역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민망할 때가 많다”며 “하루 승객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했다. 코레일이 많은 시골역을 줄여나가고 무인화하는 것에 내심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이 역무원도 역의 현실을 부정하기에는 퍽이나 곤욕스러운 것 같았다. 역 대학실에 걸린 열차시간표가 단출한 것이 그의 고민을 단박에 보여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최근 시골역의 폐쇄나 무인화 정책에 달갑지 않은 반응이다. 시골역들이 사라져가는 것은 오래된 초등학교의 폐쇄처럼 해당지역의 집단적 기억과 역사를 앗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오래된 초등학교들이 비어가듯이 열차승객은 나날이 줄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런 시골역을 소생시키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광주송정역에서는 경전선을 따라 부산까지 가는 남해해양관광열차가 개통했다. 시속 50~60km로 더디게 흘러가는 열차의 낭만과 경전선 운영의 상업적 이익을 모두 겨냥한 시도처럼 보인다. 비록 운임 때문인지, 아니면 홍보부족인지 주중 오전의 관광열차에 승객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남평역의 코스모스나 득량역 앞길의 오래된 시골 역전 풍경을 재현해 놓은 곳은 한번쯤 가볼만했다. 그래서 일까? 시골역이 사라져가는 것이 반드시 한 가지 원인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줄곧 떠나지 않았다.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조광철 님은 태생이 목포, 그러나 광주에 대한 누구보다 극진한 애착은 갖은 사람. 숨겨진 광주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옛 지도를 살피고, 토박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고, 기록의 습관을 유전자 속에 각인시켜 놓은 사람.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증언과 조사를 통해 흐트러진 시간의 파편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현재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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