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를 자극하는 얼큰한 뚝배기의 맛

 부스스 미닫이 철제문을 제치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식당 안은 몇몇 테이블에 손님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고, 젊은 할메는 쟁반을 쳐들고 분주하다. “안되겠소, 다음에 오소” 쥔장의 대뜸 건네는 말씀이 인정머리 없이 머리통을 훑고 지나간다. “아니, 빈자리가 이렇게 많이 있는 디, 여그서 만날 일행이 있어서 그란디요, 삼사십 분 후에라도 오면 안될까요?” 라고 물었다. 할메는 보지도 않고 “그렇게 해볼쇼” 라는 말을 툭 던진다.

 오미 뚝배기 식당은 전남여자고등학교 후문 쪽에서 복개도로를 타고 동명동 방향으로 200여미터 올라오면 간판이 보인다. 식당 맞은편 표지목은 이 곳 식당 주변에 아시아문화전당, 대인시장, 동구청이 있음을 보여준다. 40여년을 지나온 청운수퍼는 그대로이고, 그 옆 청운학원 자리는 주거 건물로 변했다. 식당 근처에는 예술창작소 ‘꽃피다’ 와 예술의 거리에서 이전한 극단 토박이와 소극장 민들레가 있다. 인근 마트 정자에 호젓이 앉아있는 노인의 뒷모습이 을씨년스럽다. 빈 막걸리 통이 뒹굴고 있는 쓰레기 더미는 초가을의 낙엽들로 묻혀 가는데, 불볕더위의 여파는 한 낮의 기운을 꽁꽁 묶어 놓고 있었다.

 

 쥔장과 일면식이 있는 일행을 앞세우고, 식당 문을 확 열고 들어갔다. “워따메, 뭔일로 고로코롬 사진을 찍었사요? 찍지 마소, 나죽일라고 그러요” 쥔장이 먼저 선수를 치고, 너스레를 떨어댄다. 쥔장의 성정을 간파한 일행이 “걱정 붙들어맬쇼, 안잡아가요. 식당 입소문이 자자해서 한번 둘러보고, 두고두고 추억에 쓸라고 그런다요. 좋은 일에 쓸것인께, 냅두고 얼른 밥이나 내올쇼” 라고 맞받아친다.

 미닫이문이 달린 안쪽에는 천정이 시원하게 확장되어 있다. 단골손님들로 보이는 젊은 처자들이 스스럼없이 식탁을 정리하고 행주로 테이블을 훔친다. 술잔과 채지 한 종지를 놓고 주름살마저 탱탱하게 보이는 젊은 할메는 금새 주방으로 후다닥 사라진다. 가뿐히 묵직하게 손끝에 걸린 막걸리 잔에는 뿌옇게 바랜 추억이 한 올 한 올 피어오른다.

 “80년대 중반 무렵이었제. 영광 백수염전 어딘가에서 두어 잔으로 술바닥을 드러내곤 했던 큼지막한 질그릇 동이 술잔이 생각나네. 허구헌날 그렇게 술을 마셨던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세월이었네. 그 동이 술잔에 밤새 막걸리로 들이 붓고 쏟아 붓던 다음 날, 횡설수설로 초지일관으로 대들어서 쥐어터지고, 취조당하고, 신분증 잽히고 간신히 풀려났던 기억이 새록새록 몸서리 쳐지네.”

 

 풋고추와 깨, 양파와 대파를 듬성듬성 올리고, 두툼한 돼지 불고기가 기름종이 위에 얹혀 나왔다. 커다란 대접에 한가로이 누운 묵은지 한 다발과, 파무침, 양배추, 된장과 마늘, 양념장과 뚝배기 김칫국이 연이어 나왔다. 입안으로 꽉 차오르는 돼지불고기의 맛도 그러거니와 뚝배기 묵은지의 얼큰한 맛과 양은 대접에 누운 7년 묵은지 맛이 일품이다. 시꺼먼 된장은 40년 묵은 씨된장을 살려서 아직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근디, 오미 뚝배기가 뭐다요? 뭐긴 뭐겄소. 오미는 오미고, 뚝배기는 뚝배기지 뭐다요. 사진찍고 물어봤쌌고, 바빠 죽겄는디.” 옆 테이블에 처자들이 묻는 말에, “그려, 매실 담글라고 그라제. 설탕 많이 느면 안돼, 약간 넣어, 초파리가 끓어야 써, 가는 모기장이나 헝겊떼기로 야무지게 싸서 보관하면 돼”

 막걸리 잔이 한 순배 돌고, 주방일이며 서빙타임이 느슨해지자 연륜이 묻어나는 쥔장의 붙임성 있는 입 서비스가 전해진다. “묵은지 맛이 괜찮지라? 예전엔 광주에서 내로라고 하는 술꾼들이 득실득실 했제. 생선도 많이 취급혔어. 지금은 안~혀, 손이 많이 가서 혼자는 못해 묵어. 전남도청이 이전한디로는 귀신나오게 생겼어. 문화전당? 말도마소, 평당 가격이 쫄아들었어, 더 죽겄단 말이시. 요즘도 가끔 병치회나 찜을 해주라는 사람들이 있는디. 지금은 돼지불고기만 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예약을 해야 돼. 병어 고것은 경상도 통영이니 뭐니 해도 군산 것이 지대로인디. 고개미젓을 묵고사는 병치를 써야 왔다지“

 

 “근디요, 목이메서 그런디, 물 한사발만 갔다주면 안 되것소?” 라고 무심코 물었다.

 “그려, 싸게 갔다 줘야제. 지체 높으신 영감탱이들도 물은 각자가 알아서 묵는디. ‘셀프’라고 떡하니 베름빡에 써서 붙어진 것을 두 눈으로 목도허고도, 갔다 바치랑께. 암만, 갔다 줘야제. 좌우당간 뭔 사연인지 몰라도, 막걸리 한 잔에 얼굴이 삘게가지고, 목소리도 솔찬허고, 사진도 마구 찍었샀제….” 주절거리면서 어느새 휙 하고 물통을 놓고 간다. 물을 마시다 말고 속으로 “아이고, 이 할메, 밥 남기면 또 뭔 잔소리를 할까 무서운디”, 하면서 밥 덩어리를 찬물에 말아 후루룩 마시고, 채지를 오물오물 씹으며 식당 밖으로 나왔다.

 붉게 물든 오미와 흐릿한 뚝배기의 간판글씨가 보인다. 이 집 다섯 가지 맛은 아마도 ‘어리버리한 손님을 대하는 쥔장의 화통한 입담 맛’, ‘창자를 자극하는 뚝배기의 얼큰한 맛’, ‘혓바닥에 착 감기는 40년 묵은 된장의 눅눅한 맛’, ‘순국산 돼지불고기의 쫄깃쫄깃한 맛’, ‘7년 묵은지의 간담을 써늘하게 하는 맛’이 아닐까? 식당 문을 처음으로 두드린 낯선 이를 유쾌하게 배려하는 쥔장의 입 서비스는 그 오미 중 으뜸이라 할만하다.

▶ 차 림 : 돼지불고기(1인) 12,000원, 기타 주류 등

▶ 주 소 : 광주 동구 동명로 8-5(장동 58-19)

▶ 연락처 : 062)234-4694

※현재 쥔장이 서빙까지 하여 매우 바쁘니, 미리예약을 하시고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글·사진 : 장원익(남도향토음식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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