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오열하는 평양
`김정은 후계화’ 신호탄 읽혀
북한방송 시스템 세뇌 주민 모습 적나라하게 비춰
`독재의 그늘’ 남한선 여전한 생명력 `음모론’ 꿈틀

▲ 김정일 사망 관련 MBC보도 화면 갈무리.

 여기저기 계획 없이 싸돌아다니는 여행 중에 역사적인 사건이 터져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상황을 직접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로 이번 북한의 김정일 사망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오늘(12월20일) 늦은 아침 인터넷 방에 들려 메일을 체크하는데 김정일 사망이 모든 외신의 헤드라인으로 올라와 있었다. 국내 포털 사이트로 들어가니 이미 생난리였다.

 그래! 한국에서야 생난리가 날만도 하지. 벌써 주가가 하락하고 환율이 널뛰듯 하니까.

 내가 이번에 라오스에 와서 보니 달라진 게 꽤 있어보였다. 내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 TV가 놓여 있었고 케이블로 다국적 채널을 볼 수 있었는데, 북한의 평양중앙방송도 끼어 있었다. DJ와 노무현의 평양 방문 때 북한 주민에게 소식을 알려주던 평양중앙TV 그 여자 앵커가 어김없이 라오스 TV에도 나타나 비장한 모습으로 사망 소식을 알려주고 있었다.

 무슨 큰일이 있을 때 남한 당국에서 북한에서는 어떻게 보도하는가를 맛보기로 찔끔찔끔 보여주던 그 방송을 통째로 볼 기회가 온 것이다. 옛날 같으면 남한에서도 나도 평양TV 본다고 까발리지 못했을 것이다. 막상 통째로 조금 보았는데 정말 재미없는 방송이다. 방송의 90%가 체제 선전에 위대한 어버이 수령 김일성 대장군과 그의 아들 경애하는 수령동지 김정일 장군 띄우는 선전 방송이기 때문이다.

 현지지도에 아들 김정은 꼭 대동

 첫날 본 대부분은 김정일이 나라 곳곳을 다니며 소위 현지지도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탄광에 가서는 화력이 없는 질 좋은 석탄을 발전소에 보내야 한다는 말씀이 있었고 농원에 가서는 맛좋은 과일을 많이 생산해 인민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교시가 있었다.

 흥남 질소비료공장이며 기계공장이며 국숫집까지 방문해 격려하며 바쁘게 돌아다녔는데, 그 옆에는 아들 김정은이 꼭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고 발표한 오늘 TV 화면은 명실상부한 초상집 분위기. 그야말로 카메라가 가는 곳마다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왜 처음에 국립 인민극단에 갔는지. 극단장 부극단장 배우들 차례로 인터뷰를 하는데, 한결같이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는 연극인들의 모습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것인지 실제의 모습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였다.

 그들이 한마디 할 때마다 같이 있던 단원들, 특히 여성들은 아예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대성통곡을 했다. 부극단장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우리를 보살펴 주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실 수 있느냐”며 가슴이 찢어진다며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곡성이 최고조에 달했다. 다시 극단장에게 마이크가 넘어가자 여전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위대한 계승자 김정은 동지를 받들어 모실 것을 다짐한다”고 끝맺었다.

 바로 이어 김정일이 가는 곳마다 뒤따라 다니는 김정은이 화면에 클로즈업되면서 그를 띄우는 작업의 신호탄이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물론 그동안 내부에선 벌써 작업이 시작되었겠지만,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승계작업에 차질을 가져올 수도 있는 화급한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바람잡이’들은 바쁘게 보였다. 아마 수백 명이 됨직한 합창단이 군악대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장송곡 같은 무거운 곡을 부르고 지난날 숱하게 불렀던 혁명과업 완수가 주제인 곡들을 메들리로 들려주고 있었다.

 

 `혁명과업 완수’ 주제곡들 메들리로

 거대한 신축공장 건물에 걸린 `조선이 결심하면 한다’는 표어와 걸개그림들이 오버랩 되며 멀리서 들리는 노래 소리. `김일성 찬가 수령님 따라 천만리 당 따라 천만리… 북만의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김일성의 항일투쟁> 락동강의 험한 전선에서도 <6·25 전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말자…’ 카~ 지금 21세기 맞아?

 오랜 세월 한 시스템에 세뇌되면 별 재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팍팍 드는 순간이었다.

 한편 북한 밖의 세상도 그들 기득권층이 형성한 시스템에 세뇌당하고 사는 건 사실상 마찬가지다. 특히 남한이라는 곳 또한 김정일 못지않은 독재자들 밑에서 오랜 세월 살면서 그들이 펴는 각종 음모론에 세뇌돼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들고 일어나는 온갖 음모론들 가령, `정말 그렇게 죽은 거 맞아?’하는 의문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남한 시청자에게도 친숙한 평양 중앙TV 여성 앵커의 말을 그대로 함 들어보자.

 “경애하는 당비서이시고 국방위원장이시며 인민군 총사령관이신 위대한 김정일 장군께서 17일 8시30분에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장군께서는 오랫동안 심장과 내혈관 질병을 앓으시다가 급작스러운 심장 쇼크로 주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면 하시었습니다.”

 그들의 공식적인 발표를 믿고 안 믿고는 또 각자 몫으로 떨어진 남한사회. 그러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놈들을 신주 모시듯 한 조중동 찌라시 덕분이다.

라오스에서=서유진 eeugenesoh@gmail.com, 페이스북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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