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지붕 위에 오른 사람들
각국 여행자 반가운 `통성명’

▲ 인도차이나 반도의 서유진 선생.

 매년 세모(歲暮)나 연초에 사람들이 나누는 인사 말에 빠지지 않는 게 있는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면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다. 일상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일상을 벗어나 길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여행족들에겐 그런 말이 실감 나지 않을 뿐아니라, 새해가 되든 명절이 오든 어떤 하루에 불과할 뿐이다.

 여행 중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토요일이면 어떻고 월요일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기 때문이다. 밥 먹는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배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면 될 뿐.

 

 지겨운 일상, 일탈을 꿈꾸면서

 그래서 지겨운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이 여행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값진 여행을 단체로 한다? 여행사에서 조직한 패키지 상품을 신청한 사람들은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고 보면 된다. 아니 어쩜 훈련소보다 더 엄격한 스케줄을 맞춰야 하고 지켜야 할 규칙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혹자에게 `일탈’이란 정상적인 행위가 아닌 몹쓸 짓을 꿈꾸는 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일탈이란 일상에서 축적된 찌꺼기들을 털어낼 수 있는 시간으로, 자신을 재충전하면서 성찰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일 수 있다.

 몇 년 전에 나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 폐허의 사원에 올라간 일이 있다. 그곳에서 금발의 젊은 여성 배낭객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되고 시내에 들어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덴마크에서 온 그녀는 25살의 패션 디자이너였다.

 패션디자이너라면 뉴욕·런던·파리 또는 밀라노에서 헤매야 할 사람이 웬 캄보디아?

 그렇게 물어본 내가 무식의 장본인이었다.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알고 있었던, 아니 사실은 세뇌당한 찌꺼기는 지금도 내 몸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다가 튀어나오곤 한다.

 그래 패션 디자이너는 그런 곳만 헤매야 되는 거여?

 그녀의 답은 “패션은 어디가 중심지라는 건 없다”고 했다. 서구사회와 다른 동양에 와서 처음엔 문화 충격도 받았지만, 이곳 사람들이 걸치고 있는 일상복이나 전통복장을 보면서 지금까지 덴마크에서 가졌던 패션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고. 호~~

 

 패션 전공자라고 파리만 찾아갈까?

 앙코르 와트가 있는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수도 프놈펜까지 스피드 보트를 타고 여행할 때다. 100여 명이 탈 수 있는 큰 보트로, 톤립삽 강을 따라 빠르게 달리는 데도 약 5시간 가까이 걸린다. 보트 내부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고 편한 의자도 있는데, 여행객 대부분은 안락함을 마다하고 보트 지붕 위로 올라간다. 지붕은 평평해서 앉거나 누워서 잠도 잘 수 있다.

 값이 버스보다 훨씬 비싸므로 현지인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고 서구에서 온 여행객이 대부분이다.

 배가 떠나기 전까지는 보트 안 지정 좌석에 배낭을 놓고 앉아 있다가 배가 떠날 쯤 지붕 위로 올라간다.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은 얼굴에 솜털이 그대로인 예쁘장한 백인이었는데, 별로 유쾌하지 않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 아가씨는 머리도 안 감고 다니나?”

 지붕 위로 올라가기 위해 나오는 데 그녀도 따라 나왔다. 벌써 지붕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여성들이 대다수였다. 또 다른 여성 옆에 넉넉한 자리가 있어 그 틈에 끼었다. 둥지를 틀게 되면 주위 사람과 통성명도 하고 어디서 왔느냐는 등의 예의적인 대화는 필수.

 나와 함께 지붕 위로 올라온 여성은 미국 시카고 근방에서 왔고, 먼저 자리를 차지한 여성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그때는 우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인 6월 말이나 7월쯤이었다. 미국 여성은 5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9월까지 여행 중이라고 했고, 독일 여성은 대학원생인데 여름방학 동안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들과 캄보디아 시엠립~프놈펜 보트여행 동기가 되었다. 그들이 프놈펜에 도착하면 다른 곳으로 가기 전 며칠 동안 머물 것이어서 한두 번은 더 만날 확률이 높았다. 어느 곳을 가던 여행객들이 몰려 있는 거리가 있고, 그곳에는 게스트하우스, 식당, 카페, 인터넷 방이 몰려 있어 어디서든 맞닥뜨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질문화권 이해하는 기회

 다시 만나게 되면 여행 동기라 반갑고, 일면식이 있었던 터라 편안하게 식사도 같이 하곤 한다.

 다시 식당이나 카페에서 만나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나누다 보면 자신들이 사는 나라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여행객을 통해 그들 문화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생생한 아이디어도 얻는다.

 여행의 묘미가 이런 데 있지 않나 하는데, 뭐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프놈펜 도착 다음날 숙소 근처 식당에서 다시 마주친 미국의 리즈(Liz)라는 여성과 커피를 마시는데, 보트에서 맡았던 그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왔던 독일의 몰리카(Molika)는 같은 게스트하우스를 잡았는데, 우체국에 갔다고 했다.

 몰리카가 왜 우체국에 갔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계속>

프놈펜에서=서유진 서유진 eeugenesoh@gmail.com


서유진 님은 10여 년 동안 정글을 누비고 다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스리랑카·인도·태국·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민중에게 5·18광주항쟁의 역사와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진 10년 간이 그가 `5·18의 아시아 전도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기간이다. 현재도 동남아에 머물며 각 나라의 민중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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