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주사를 맞아가며 걷고
 길 위에서 먹고자는 배낭객들

▲ 캄보디아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

 시엠립에서 프놈펜으로 가는 스피드보트는 이 지역을 여행하는 배낭객들이 꼭 한 번 타보고 싶은 코스다. 톤리삽(Tonle Sap) 호수. 말이 호수지 동남아지역 담수호로는 가장 커서 사실상 바다나 다름 없다.

 이 호수에서 넘치는 물이 흐르는 곳이 톤리삽강(Tonle Sap River)인데, 이 강물은 프놈펜에서 메콩강과 합류한다. 이 강은 계절마다 흐름이 다르다. 우기에는 호수에 넘치는 물로 프놈펜 쪽으로 흐르지만, 건기에는 수위가 낮아져 호수 쪽으로 역류하는 것이다.

 스피드보트는 시엠립에서 프놈펜까지 장장 5시간을 달린다. 하지만 바다가 아닌 강이고, 속력이 안정돼 있어 배 멀미하는 사람은 없다. 지붕 위에서는 누워 잠자기도 하고, 책도 읽고, MP3로 음악을 들으며 주위 경관을 즐긴다. 패키지 여행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악조건 속 오지여행에 도전하다

 리즈(Liz)와 몰리카(Molika), 그리고 덴마크에서 왔다는 젊은 사내가 간헐적으로 우리 대화에 끼어들어 보트 동기생이 되었다.

 그런데 대화 도중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몰리카가 갑자기 입고 있던 티셔츠를 올리고, 복부에 주사 바늘을 아무렇지도 않게 푹 꽂는 것이었다. 헉~~. 당뇨병 환자의 생명줄인 `인슐린’을 스스로 시술하는 것이다.

 그녀는 주사 바늘을 빼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대화에 참여했다.

 `아프지 않아?’하고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맞아 왔다고 한다. 찌를 때는 아프지 않은데, 어디에 찌를까하고 위치를 찾을 땐 성가시다고 했다. `찌른 데 또 찌르면 아프다’고 웃는다. 그것도 환하게. 저런~. 짠한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 그 많은 약을 어떻게 들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자기 아버지가 보내준단다. 여행 일정을 아빠에게 알려주면 자신이 도착하는 도시나 마을 우체국에 차질없이 도착돼 있다는 것. 자기가 프놈펜에 도착하면 이미 약은 그곳 우체국에 도착해 있을 거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지 여행을 하고 싶을까?

 리즈는 한국으로 말하자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고생이나 다름없는데, 생각이 좀 엉뚱한 면도 있다. 하지만 멍청한 게 아니라 영민한 타입으로 보였다. 진학할 대학이 결정돼 있다는데,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에 있는 사립 명문인 다트머스 칼리지(Dartmouth College)란다. 바로 아이비리그(Ivy League) 중 하나다.

 그녀는 아버지가 준 돈으로 미국에서 떠날 때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현지에 와보니 모든 것이 너무 싸서 막 쓰다보니 애초 계획보다 오버돼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인도 힌두들의 성지인 `바라나시’에서 시작해 네팔, 티벳, 중국, 라오스를 거쳐 3일 전 시엠립으로 왔단다. “어디서 묵었냐?”고 물었더니 거의 길 위에서 잤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인근의 호텔 화장실을 이용해 칫솔질하고 얼굴 좀 훔치고 쌩쌩거리고 다닌 모양이다. 2~3일이나 3~4일만에 게스트하우스를 잡아 목욕도 하고 쉰다며 해맑게 웃는다. “여행 중 돈이 모자라면 집에 연락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더니 아버지와 한 약속을 깨고 싶지 않다고 했다. 원래 넉넉하게 가지고 떠났는데, 멍청하게 막 써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됐으니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전날 프놈펜에 도착해 싸구려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목욕도 하고 잠도 편안하게 자고 난 리즈의 모습은 상쾌해 보였다. 식사값을 대신 낸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런 경우라면 (값이 싸기도 하지만) 좀 무리가 되더라도 얼마든지 팍팍 쏠 용의가 있다. 나도 기쁘기 때문이다.

 

 “거의 길 위에서 잔다”는 고3졸업생

 그런데다 이 아가씨 말이 그렇게 예쁠 수 없다. 그래도 자기는 현지인들보다 훨씬 풍요롭게 지내는 편이라 감사하고, 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한 아버지에게도 감사한다고 했다.

 이러니 이 친구들이 여지껏 세계를 주도하며 패를 잡고 있지 않겠는가? 이런 친구들이 또 나중에 미국의 한 축을 맡게 될 것이다.

 그를 통해 나는 또래의 한국 아이들을 생각했다. 매년 치르는 수능시험은 일찍부터 어린 인생을 좌우하고, 수험생은 물론 가족 전체의 운명이 걸려 고3생이 있는 가정은 비상이 걸리는 나라. 그 엄청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반복되는 데도 속수무책인 정부.

 또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서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의 하숙집이나 자취방엔 시도때도없이 전화가 울린다. 혼자 놔둔 자녀가 불안한 부모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다 큰 아이인데도 그들 통제권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온 집안이 좌불안석인 나라다. 이런 판국에 무슨 여행? 그것도 나홀로? 3박4일도 아니고 몇 달씩이나?

 최근엔 유행병처럼 해외자원봉사가 번지고 있다. 취직 때 써먹을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서다.

 연예인들이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기획사 촬영팀을 끌고 와 현지에서 불쌍한 사람들을 배경으로 눈물을 흘리지만,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선 생수로 샤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슬프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드라마감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젊은이들의 비극은 시스템이나 시스템을 관리하는 정부의 책임이 일차적이다. 공범도 있다. 아이들에 대해 과욕을 부리는 부모들이다.

 진정으로 행복을 원하는가? 여행을 권한다.

 앞만 보고 뛰어온 인생을 돌아보며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를 성찰하는 시간은 여행 중에만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이를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 번씩 털고 일어나 여행을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시엠립<캄보디아> 에서=서유진 eeugenesoh@gmail.com


서유진 님은 10여 년 동안 정글을 누비고 다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스리랑카·인도·태국·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민중에게 5·18광주항쟁의 역사와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진 10년 간이 그가 `5·18의 아시아 전도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기간이다. 현재도 동남아에 머물며 각 나라의 민중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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