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와트와 킬링필드
민중의 부역·희생 `섬뜩’

 얼마 전 광주의 한 지인이 `패키지 여행’으로 앙코르 와트가 있는 `시엠 립’으로 온다 해서 그 곳에 갔다. 불과 몇 달 사이인데도 시엠 립은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그마한 시장을 끼고 있는 펍 스트리트(Pub Street)는 관광객이 모이는 중심이다. 현지인이 모여 꾀죄죄하게 벌려 놓은 식당 커피숍은 사라지고, 이제 유럽의 한 거리를 연상케 하는 빵집·카페 바·식당들로 채워졌다. 이곳은 현재 `하이 시즌’답게 관광객으로 바글거리고 있다.

 최근 시엠 립에 새로운 관광 명소가 문 열었는데, 매머드급 뷔페 식당과 대형극장을 갖춘 `Smile of Angkor’라는 곳이다. 지인 덕택에 패키지 부대와 함께 식사도 하고 극장에서 쇼를 봤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니 내가 캄보디아에 와 있는 거 맞어?

 `Smile of Angkor’ 간판엔 반드시 한자가 따라 다닌다. 오가적미소(吳哥的微笑)… 흠~. 이 시설은 100% 중국 자본으로 건축됐고 운영도 그들이 한다고 들었다. 3D 영상과 컴퓨터그래픽을 동원, 실물 크기의 코끼리가 사원 건축에 필요한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끌고 가는 장면을 현대무용으로 안무한 댄서들의 춤과 아름다운 크메르의 전통무용인 압사라 춤이 어우러진 무대가 장관이다.

 이곳도 디지털 시대인지라, 막이 바뀔 때마다 망치를 들고 무대를 바꾸는 일은 없어졌다.

 3D 영상이 실물보다 더 명확하게 스토리를 극대화하는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1998년 내전이 끝나던 해, 시엠 립에 와 처음 앙코르 와트를 봤을 때 느꼈던 기분은 이제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1000년의 신비에 감춰진 눈물

 앙코르 와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섬뜩함에 그야말로 소름이 돋았다. 아니~ 1000년 전에 어떻게? 그리고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1000년 전 그들의 삶을 그대로 볼 수 있단 말인가? 캄보디아에선 고증하기 위해 옛날 서적을 뒤질 필요가 없다. 이곳에 오면 모두 그대로 있으니까.

 하지만 `이 거대한 사원을 건설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섬뜩해진다.

 당시의 군왕들은 자기는 물론 가족들이 신과 특수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데 필요한 거대 신전을 지었을 것이다. 신화를 창출하는 수법 중 하나가 이 같은 대역사다.

 여기에 담긴 메시지는 “아무나 왕이 되는 거 아니니까, 꿈 깨고 그저 시키는대로 하면서 살면 돼” 아닐까?

 이때 동원된 노력 봉사는 끓임없는 전쟁에서 잡혀온 이웃 나라 포로들이나, 맥없이 이 땅에 태어난 평민들이 대부분이었을텐데. 사원 하나 짓는 데 최소 34년, 어느 사원은 120년에 걸쳐서, 그것도 기계 하나 없이 맨손으로 건축됐으니 작업장에 끌려오면 세대를 이었을 것 아닌가?

 한 작업장에 끌려와서 삶을 마쳐야 했던 수많은 인생들의 희생으로 완성된 이 거대한 역사를 한참 후에 등장한 고고학자, 인류학자, 미술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낼 때, 나는 이 모든 것을 광기로 보았고,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1000년 후, 이 나라는 `붉은 크메르’ 즉 `크메르루즈’가 자행한 `킬링 필드’를 겪게 된다. 나라를 바꾼답시고, 마치 광주리에 담긴 사과 중에서 썩은 것은 물론이고 옆에 썩을 가능성이 있는 것까지 골라버리듯 사람을 솎아낸 `킬링 필드’…. 이것을 광기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캄보디아’는 광기의 문화로 돈을 버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실상 외국 관광객들이 캄보디아에 오는 목적은 딱 두가지인데, 하나는 시엠 립에 있는 앙코르 와트를 보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프놈펜 외곽에 있는 `킬링 필드’를 보기 위함이다. 물론 아름다운 바닷가가 있는 휴양지 `시하누크빌’도 있지만, 돈이 되는 건 두 곳이란 말이다.

 

 민중 탄압하는 지배세력 현주소

 아무튼 나는 `킬링 필드’의 주역인 `폴 포트’라는 인간이 한 말을 책에서 읽었을 때 한국의 오늘을 생각했다.

 폴 포트는 모택동주의자였다. 그렇다고 그가 무식한 농부의 자식으로 죽창으로 무장하고 붉은 완장을 차고 설친 친구만은 아니었다. 그런대로 괜찮은 집안에서 당시 프랑스에 유학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수천 년의 절대왕정과 봉건주의와 프랑스 식민지배와 미 제국주의자의 지배 하에서 배우고 훈련된 지식인과 관료들은 개혁이 불가능한 것이다.”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재교육이 필요한 데 그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싼 방법을 찾은 게 천인공노할 자국민 도륙이었던 것이다.

 해방 후 한국 사회를 반세기 넘게 지배하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들어선 현재의 지배세력의 배경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나라가 일제 식민지일 때 그들에게 부역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자식들은 에딘버러, 옥스포드, 하버드 대학 보내 지식인으로 만들어, 교육 부분과 관료로 체제 구석구석에 박아놓고, 해방 되자 그들이 바로 나라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게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치관 전도현상을 가져온 첫 단추였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역사상 최초로 헌정을 파괴하고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군부독재가 등극하자 그들은 재빨리 정권에 부역하면서 다시 한 번 부귀영화의 전성기를 누렸다. 민중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데 앞장서 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리고 이들에게는 개혁이 가당치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한국은 그들에게 표를 줬다. 이게 현주소다. 한 번 더 인내심을 가지고 올 총선과 대선을 지켜볼 작정이다.


시엠립<캄보디아> 에서=서유진? eeugenesoh@gmail.com


서유진 님은 10여 년 동안 정글을 누비고 다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스리랑카·인도·태국·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민중에게 5·18광주항쟁의 역사와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진 10년 간이 그가 `5·18의 아시아 전도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기간이다.

현재도 동남아에 머물며 각 나라의 민중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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