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우리치오 카델란 작품 `무제’

 세상엔 사람도 가지가지 종교도 가지가지. 하지만 상식과 통념을 벗어나고, 사회라는 합의된 틀과 질서를 깨트리면서 존재하는 개인과 신앙공동체는 여지없이 물의와 파란을 일으킴은 물론이려니와 사회 전체를 공포로 몰아가게 되어 있다.

 얼마전 보성에서 일어난, 일명 `구원파 형제교회’ 삼남매 살해사건은 정식 목사 안수를 받았던 받지 않았던 간에, 목회자 부부의 맹신에 의해 벌여진 자녀 유기폭력 살해사건으로서 사회 성원 전체를 충격과 공분의 도가니로 밀어넣고야 말았다. 한국 개신교는 지금껏 숱한 분열과 분리를 거듭하여 교파가 밤하늘의 별만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런 통제 불능 상태에서 빚어진 병폐에 대해 누구하나 책임지는 단위가 없다는 건 더더욱 공포스러운 현실이다. 마치 바퀴가 파열된 채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버스를 보는 듯 아찔할 따름이다.

 이성을 상실한 맹신, 광신은 마약처럼 현실 외면의 퇴폐를 조장하며 많은 사이비 교회들을 성장시켰다. 부끄럽게도 기성 교파까지 포함하여 일체가 더 충성하기, 더 동원하기, 더 높은 건물쌓기 경쟁을 벌이면서 인간의 정겨운 골목을 야수의 정글로 만들고 말았다. `이웃과 아낌없이 나눠라!’가 아닌 `이곳에 죄다 갖다 바쳐라!’를 입에 달고 사는 종교인은 백이면 백 가짜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세운 벽돌 건물들, 그들이 모인 조립식 건물들 안에서 벌어지는 백태는 참람한 신성모독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자본숭배의 현장이다. 종교인을 가장한 장사꾼들은 알량한 축복을 팔아대며 엉터리 맹신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길에서 찬송을 부르면서 전도를 하고, 집집마다 무대포로 방문하여 전도지를 돌리는 저 폭력성은 그야말로 제3세계를 끝없이 수탈하는 제국의 음흉한 표정과 하나 다를 바가 없어라.

 수도자도 아닌 일반인들에게까지 강요되는 금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가난한 이웃과 밥을 나누고, 더 가지지 않으려 절제하는 삶이 바로 금식이며 경건이지 않겠는가. 밥을 몇 끼 먹지 않는 자학은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과 딴판으로 다른, 청산되어야 할 율법의 고수(고집)일 뿐이다. 보성 삼남매는 금식에 배를 곯고 귀신이 들었다면서 매를 맞았다고 한다.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귀신이라 칭한 존재는 무지했던 시절의 `부정적 세계인식’일 뿐이지 결코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귀신이란 존재는 영혼을 가진 인간의 에너지장일 뿐 따로 인격을 가진 무슨 존재가 아니다. 문자대로 성경을 백프로 믿는다는 무지몽매한 자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이겠지만, 악령 귀신은 돈을 하느님보다 사랑하는 마음, 권력을 하느님보다 사랑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지 무슨 도깨비 놀음이 아님은 물론이렷다.

 조그만 교회에서 생의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고 살던 젊은 부부는 가난에 병든 사람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가난은 어떤 이들에게 세상을 극복하는 거룩한 힘이 되기도 하지만, 무지하고 무력한 사람들에겐 가난만큼 잔인한 형벌도 없는 것이다.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겪었거나 어른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이들이 대개 맹신적인 신앙 행태를 보이고는 한다. 교회에서든 절에서든 `열성 신자, 열성 신도’를 자랑하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열성적인 성원으로 빛과 소금이 되어야 옳지 종교 단체 안에서 보이는 충성은 그저 종교인의 카리스마에 세뇌된 결과일 뿐이다. 종종 이런 맹신에서 비롯된 참혹한 사건들 앞에 이른바 안티 기독교를 표방한 자들은 물 만난 고기가 되고는 한다. 그러나 개독이다 먹사다 뭐다 비아냥과 조소와 경멸 따위는 그저 순간의 쾌감일 뿐이지 또다시 이런 사건의 재발을 예방하는 노릇을 하지는 못할 터이다.

 이런 비슷한 잔혹극 앞에서 종교와 지역을 넘어 우리 모두 인간이라 한다면 한뜻 한마음으로 가슴아파하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하고, 불균형한 경제적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고자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병든 사람들과 순결한 아이들이 더는 저급하고 무지한 교회나 기도원에 유기 방치되지 않도록, 젊은이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박탈하는 사이비 종파의 덫에 걸려 청춘을 허비하지 않도록, 자기들만의 노아 방주에 갇혀 허무맹랑한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도록, 신의 이름으로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고 인간 존엄마저 잃어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리며 살아가자. 춥고 캄캄한 응달을 돌아보고 그곳을 사랑으로 환하게 밝혀내자. 연민의 눈을 활짝 떠서 같이 울고, 어서 상처가 아물도록 마음 모으자.

 임의진 <시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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