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여행 땐 이질문화권 접촉 어려워

▲ 비엔치엔 메콩강가.

 지난 달 대부분을 태국에서 하루 놀고 하루 쉬다가, 다시 쉬는 모드로 캄보디아에 왔다가 엊그제 라오스로 왔다. 전남대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라오스로 오겠다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천-비엔친엔 직항이 생겼다. 한국에서도 라오스가 여행지로 뜨면서 (저가 항공이긴 하지만) 직항이 생긴 것이다. 이젠 접근성이 좋아져 더 많은 한국인이 오게 될 것이다.

 태국에서 노는 시간을 갖게 된 계기는 올 5·18 행사에 광주로 데려와야 할 사람들을 `꼬시는’ 작업을 도와준 덕이다. 길 위에서 맥없이 떠돌다가 간헐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놀 일이 생기거나 지인들이 오는 경우는 그래서 반갑다.

 최근 태국의 `치앙마이’나 산간마을 `파이’에는 어느 때보다 서구인들이 와글거린다. 이 지역의 서구인 증가는 결코 장난이 아니다.

 광주에서 온 6명(대부분 교수들)은 라오스 초행길이었는데, “분위기가 태국, 캄보디아, 월남과는 다르다”면서 “오길 잘했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들과 점심을 먹고 음료수 가게로 옮겨 `맹고 쉐이크’를 대접했는데, 옆자리에 있던 여행객이 말을 걸어왔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네덜란드(화란)인이었는데, 내가 입고 있는 `라오 비어’ 티셔츠를 보고 어디서 구했는지 물었다. 자기도 사고 싶다고. 그는 대낮부터 `라오 비어’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코리아”라고 했더니 “오!”하며 잘 아는 듯한 제스추어다. “히딩크 때문이야?” 그는 실제 히딩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말야 한국과 네덜란드와는 무슨 인연(Karma)이 있는 것 같다. `당신 하멜 알아?’” 하고 물었다. 지금껏 나는 네덜란드인 중에서 하멜을 알고 있는 이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우리는 400여 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했다.

 조선시대에 한국의 남해와 제주도 사이에서 난파된 화란 상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강진 앞바다에서 구출됐다. 기록에 의하면 강진에서 7년을 살았고 그 중 몇명은 현지인 강진댁과 살면서 아이도 낳았는데, 그 후예들이 지금도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한양에서 그들을 압송, 화란으로 돌아갈 때까지 조선 군부에서 포술을 가르치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화란으로 돌아간 사람 중 하멜이라는 사람이 쓴 기록 즉, `하멜 일기’는 서양에 코리아를 알린 최초의 문서라는 사실을 들려줬다. 그리고 400년 후 거스 히딩크라는 화란인이 한국에 와서 축구팀을 세계 4강으로 이끌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렇게 난생 처음인 타인과의 경계망이 허물어진다.

 타인과의 첫 만남에 경계망이 없을 순 없다. 같은 종족도 아닌 다른 종족과의 만남은 더더욱 그렇다. 그 경계망을 허무는 정석은 없다. 오직 내가 믿는 직관으로 뚫을 수밖에.

 광주에서 온 여행객들도 `하하 여행이 가져다 주는 재미’의 한 단면을 보게 된 셈. 잠깐이나마 길거리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에선 배우는 것도 많지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도 많다.

 이질 문화권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 그들이 나에게 또는 내가 그들에 대한 관심사는 상대가 살고 있는 나라가 어떤 곳인가가 1순위다. 이 때를 대비해 내가 사는 나라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니 무슨 여행을 그렇게 복잡하게 한대유?” 하면 그만이다. 단체로 여행하면 그것대로 재미있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질문화권에서 온 여행객과 어울리기 어렵다.

 하지만 `나홀로 여행’에 맛들이면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혹 “심심하지 않으세요?” “고독하지 않으세요?”하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여행할 생각 말고 `방 콕’으로 직행 하는 게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비엔치엔에서=서유진 eeugenesoh@gmail.com

 서유진 님은 10여 년 동안 정글을 누비고 다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스리랑카·인도·태국·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민중에게 5·18광주항쟁의 역사와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진 10년 간이 그가 `5·18의 아시아 전도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기간이다. 현재도 동남아에 머물며 각 나라의 민중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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