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름은 신데렐라’
고재은 글, 윤지 그림 / 문학동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빵공장에 취직하고 싶었다. 수업을 마치면 양호실 앞에 줄을 서서 건빵을 배급받던 70년대, 그 시절을 대표하는 빵은 단연 `보름달’빵이었다. 둥그런 모양의 카스테라 사이에 연한 살구빛 크림이 발라져 있었는데 한 입 베어물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침 한 번 삼키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부드럽고 달콤한 빵의 육체. 아까워서 손톱 크기만큼 떼어먹고 쥐새끼처럼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반으로 나눈 동생의 빵이 왠지 더 커보이던 그때. 학교 옆에 빵공장이 생겼다. 3교시쯤 되면 빵 굽는 냄새가 정신을 혼미하게 흔들었고 황홀하게 코를 자극했다. 배는 사정없이 고파오고 집에 와서 소쿠리에 얹힌 보리밥을 물 말아먹고 나면 들에서 엄마가 오고 아직 흙먼지를 털기도 전인 엄마의 몸빼를 붙잡고 “엄마, 빵 먹고 싶어. 한 번만 사주라 응?”하고 보채기 일쑤였는데...

 한 번은 그렇게 사 달라고 졸라도 눈 하나 깜짝 않던 엄마가 보름달 빵 한 개와 봉지 우유를 사 오신 적이 있었다. 내가 아파서 입 안이 바짝 타고 어지러워 정신이 없을 때였다. 밥도 못 먹고 끙끙 앓는 내 모습이 엄마 눈엔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것이니 먹어보라고 건네주셨지만 한 입도 못 먹었다. “엄마, 안 아플 때 이런 것 좀 사 줘 봐” 나는 그때 생각했다. 빵 하나 사준다고 우리 집이 가난해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치사하게 구는 어른은 안 되겠다고. 빵을 먹지 못한 것보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 때문에 슬펐다. 지금 생각하면 푸훗 웃고 말 일이지만.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언젠가부터 내 `어린 마음’도 사라져 갔다. 어른이 되면 하겠다던 많은 결심들은 잊은 지 오래다. 세월이 흐른 만큼 그때의 마음과도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 낸 `내 이름은 김신데렐라’ 때문에 잠시 잃어가는 것들을 생각했다. 한때는 모두의 마음이었을 `어린 마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분.

 공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만 남자답게 행동하라는 말 때문에 갈등하던 진우가 로봇이 그려진 남색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자아이 장유미를 만나며 마음을 여는 이야기 (내 이름은 김신데렐라), 심부름돈을 킹파워 딱지 사는 데 써 버린 인섭이 이야기 (나는 보리차가 싫어!), 물건에 이름을 써 두면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에 엄마 등에 제 이름을 써 놓는 주희 이야기 (2학년 3반 이주희),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늘 나머지 공부를 하는 희철이 이야기 (희철 선인장)는 아이들 마음속의 상처와 바람을 어루만진다.

 어른들에게는 하찮기만 한 것을 간절히 갖고 싶어 하고, 사는 게 곤궁해서 살뜰히 보살피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외로워하며, 끌리는 것을 좋아할 뿐인데 남자 여자 구분 때문에 나무람을 듣거나 열심히 하는데도 부모의 기대에 못 미쳐 자신감을 잃어가는 아이들은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자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다. 일방적이고 완고한 사회화 과정에서 결국은 다치고 마는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동화는 아무래도 이미 많은 규제 속에 옥죄고 있는 어린 영혼들에게 꼭 누군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알아주는 것 같은 위로를 안겨 줄 것 같다. 천만 다행이다.  정봉남



 정봉남님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주인 되는 영토를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오래 걸었습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의 꿈속에 고래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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