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 할머니의 비밀’
우에가키 아유코 글,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올봄엔 바느질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잘 알기에, 선해서 상처받기 쉬운 마음에게 꽃수를 놓아주고 싶었다. 헤지고 얼룩진 천조각도 오색실을 꿰어 자잘한 들꽃으로 수놓으면 여간 고운 게 아니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히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같은 시 앞에서 무너지고 일어서는 봄.

 기억을 더듬어보면 할머니의 반짇고리 때문이다. 대나무살로 엮은 뚜껑 달린 작은 바구니에는 빛깔 고운 색실이며 한복 짓다 남은 천조각, 어여쁜 골무와 빛나는 바늘, 낡은 옷가지에서 떼어낸 보석 같은 단추들이 어린 나를 사로잡았다. 할머니 몰래 그것들을 꺼내서 놀고 있으면 방 어지른다고 혼나곤 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나를 불러 반짇고리를 통째로 건네주셨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냉큼 받아안고 할머니 맘 변하기 전에 내방 서랍에 모셔두고 좋아라했다. 그날 밤 할머니는 세상과 이별하셨다. 반짇고리에 대한 기억은 거기까지여서 내겐 할머니를 그립게 하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할머니와 바느질은 참 잘 어울리는 한쌍 같다. 노란 색 표지에 수더분한 할머니가 수틀을 끼고 앉아 꽃을 수놓는다. 그 곁에서 실뭉치를 굴리고 노는 고양이. 풍경이 마치 액자처럼 할머니가 수놓았을 꽃과 열매와 나뭇잎에 감싸여있다. 제목에서 `비밀’이라는 글자는 바늘이 끼워진 채 빨간 색의 백스티치로 수놓아졌다. 할머니 방안의 온갖 바느질 관련 도구들을 훑어보느라 금세 책장을 넘기지 못한다.

 스미레 할머니는 바느질을 잘 하기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도 요즘은 눈이 어두워져 실을 바늘에 꿰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할머니는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실을 꿰어 달라고 부탁한다. 어느 비 오는 날, 할머니는 손녀의 원피스를 완성하기로 약속했는데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바느질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창밖을 지나는 사람을 불러 세웠는데, 이런! 사람이 아니라 개구리였다.

 개구리는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고, 찢어진 침대를 고쳐 달라고 한다. 개구리의 침대는 수련 잎. 할머니는 척척 찢어진 수련 잎을 꿰매어준다. 그러자 날개가 찢어진 나비도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할머니는 비단 레이스로 날개를 고쳐준다. 이제 막 알을 낳아야 하는데 둥지가 떨어져서 망가진 직박구리도 무사히 알을 낳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실을 다 써버리고 모두들 어떻게 할머니를 도울까 머리를 맞댄다. 할머니도 숲속 친구들이 구해준 멋진 실로 손녀의 원피스를 완성하는데, 은빛 실로 수놓은 치마에는 개구리와 나비, 직박구리가 모두 들어 있다. 예쁜 옷을 선물 받은 손녀는 빙글빙글 춤을 추고 은빛 실은 어디서 났느냐고 묻지만 할머니는 그냥 웃기만 한다.

 바늘에 실을 끼워주는 작은 친절이 나비의 날개를 고치고, 직박구리가 무사히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 세상사는 법도 바느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땀 한 땀 작은 친절을 수놓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테니까.

 정봉남님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주인 되는 영토를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오래 걸었습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의 꿈속에 고래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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