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의 인생론’
안광복 지음 / 사계절

새봄에 갓 중학생이 된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문학수업을 한다. 아이들과 책 읽고 이야기 나누며 살아온 세월이 그새 이십여 년인데 여전히 아이들 앞에 서는 일은 설레면서도 두렵다. `말과 글을 가르치는 일은 영혼을 빚어가는 일’이라고 스스로 다져놓은 믿음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에게 문학 수업은 여전히 덜 자란 나를 만나고, 뒤늦게 그때의 나를 이해하는 시간들이다. 끝내 닿을 수 없었고, 만져지지 않았던 것들의 실체를 마흔의 내가 십대 아이들을 통해서 비로소 인식하니 아이들은 언제나 소중한 스승이다.  

 `열일곱 살의 인생론’은 고등학생 아이들이 먼저 권했다. 가족, 우정, 적성, 미래, 돈, 죽음, 성욕, 짝사랑, 열등감, 중독, 가치관 등 열일곱 살에 품어 봄 직한 철학적 물음들이 진지하여 두고두고 할 얘기가 많았다.

 “부자가 되면 더 행복한가? 인정받아야만 행복한 삶인가? 성적은 과연 능력을 보여 주는가? 삶의 낙오자는 언제 결정될까? 건전한 성욕이 인정되는 때는 언제인가? 진정한 친구는 왜 드물까? 내가 정말 바라는 건 뭘까?” 인생의 단계마다 딛고 넘어가야 할 성장과업이 있다면 이 책은 청소년기 성장통을 넘어서는 데 필요한 지혜와 선물 보따리다.

 오르지 않는 성적, 마음과 달리 꼬여가는 가족 갈등, 불량한 친구 관계, 풀 수 없는 이성에 대한 욕망 등 대한민국 청소년은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고 뜻대로 풀리지도 않는 시절을 살아간다. 머리가 커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 사회에 대한 불만,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까지 생긴다. 그러나 또래끼리 고민을 나누는 것은 고만고만하고, 선생님과 부모님은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누구도 길을 알려 주지 않으니 답답하다.

 삶이 버거울 때 사람들은 흔히 `퇴행’하는 방법을 택한다. 요즘엔 대학생들도 퇴행에 가까운 선택을 한다. 삶을 과거로 되돌려 다시 도서관에 가서 책을 펴고 공부`만’ 하면 되는 상황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살아야 만족한 인생을 보내게 될까?”라는 고민은 사실 십대에 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고민을 뒤로, 또 뒤로 자꾸만 늦춘다. 대학에 가야 하니까. 오히려 그런 고민은 나중에 해도 된다며 격려해주기까지 한다. 이른바 성장 과업의 모라토리엄, 유예가 일어난다. 진정한 고민을 자꾸만 늦춘 사람들은 결국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렇게 풀리지 않는 고민과 물음들로 마음이 복잡할 때, 옆에 믿을 만하고 친절한 멘토가 있다면? 철학자들의 `죽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살아 있는 이야기로 전해준다면? 적어도 대책없이 질풍노도에 휩쓸려 죽는 일은 없지 않을까? 끝없는 사유로 자신의 진짜 모습과 직면하다보면 고심 끝에 해결책이 생각나 세상 한 판 멋지게 헤쳐갈 기운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치고 힘든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열일곱살의 인생론’이 미더운 이유다. 철학적인 성찰은 영혼을 크고 단단하게 만든다.


 정봉남님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주인 되는 영토를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오래 걸었습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의 꿈속에 고래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