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좁은 아빠’
김남중 글, 김무연 그림 / 푸른숲주니어



 옛날 아버지들은 그랬다. 힘들어도 표 안내고, 사랑한다 말 못하고, 부드럽게 말할 줄 몰라 무뚝뚝하고 짧게 말했다. 속은 뜨겁지만 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들이었다. 요즘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훨씬 다정하고 친구처럼 지낸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아빠는 몇 점이야?”라고 물으면 덜컥 돌아올 대답이 두렵다. 그림책 `금붕어 두 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의 제목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유다.

 어쨌든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할 말이 많다면 `속 좁은 아빠’를 읽어보시길. 날마다 술에 취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동네 망신을 도맡아 시키는 아빠 정대면씨, 월급을 고스란히 술값으로 날려버리는 아빠 때문에 과외를 하면서 어렵게 생활을 꾸려 가는 엄마 진정란씨, 삶에 눈곱만치도 보탬이 안 되는 아빠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기를 두손 모아 비는 나(현주), 아직은 마냥 천진스런 동생 민두. 이 네 명의 가족이 펼치는 엉뚱하고도 유쾌한 동화다.

 엄마와 나는 술주정하는 아빠 때문에 치를 떨며 밤을 지새운다.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아빠의 술버릇을 고치는 것이 더 절실했던 엄마는 결국 무허가 금주 클리닉의 문을 두드린다. 금주 클리닉의 작전은 이랬다. 아빠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건강 검진을 받게 한 뒤 암이 발견되었다고 겁을 준다. 아빠는 충격을 받아서 당장 술과 담배를 끊는다. 그리고 아빠를 병원에 입원시켜 정밀 검사를 받게 한 다음 지방 흡입 수술을 한다. 아빠는 그게 암 수술인 줄 알고 절제된 생활을 한다. 엄마는 이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빌려 금주 클리닉에 입금하고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검진 결과, 아빠가 진짜로 암에 걸렸다. 상상 속의 일이 현실로 벌어지자 엄마와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결국 아빠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에야 나는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아빠에게 다가간다.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린 아빠의 쓸쓸한 뒷모습을 마주하고 아빠의 존재에 다시금 눈을 뜨고 수줍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읽다보면 어느새 눈가엔 눈물이, 입가엔 미소가 머금어진다.

 고단한 사회생활로 술에 절어 살다가 결국 위암에 걸리고 마는 속 좁은 아빠의 귀여운 투병기! 그 사이사이에서 빛나는 가족 간의 믿음과 사랑, 거기에 사춘기 아이들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가 참 이쁘게 보태졌다. 암이라는 선입견과 암울한 분위기를 가뿐하게 걷어내고 그 어느 작품보다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의 재발견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무심하게 여겼던 생명 혹은 목숨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한 것인지,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사랑한다면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과하고 화해하고 원망이라도 들어주는 아빠가 될 수 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이니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일이다.

 대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립거나 원망스럽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런지.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아버지를 닮아가는 나를 발견하는 젊은 아빠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숨결로 잠든 아이들의 발을 만지작거릴 때 정말로 오래 살고 싶어지는 아빠들, 우리 아이가 아빠를 기억하며 울지않게 해주고 싶어서 좋은 아빠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아빠들,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아빠들에게 바친다. 


정봉남님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주인 되는 영토를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오래 걸었습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의 꿈속에 고래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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