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미쓰비시 등 상대소송 원고 승소취지 파기 환송
일본 기업 손배소 첫 판결… 일제 피해자 줄 소송 예고

▲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2009년 2월3일 부산고등법원 항소심 판결 직후 원고 이근목 할아버지가 낙심한 표정으로 법원 문을 나서고 있다. 이근목 할아버지는 재판 과정이 길어지는 사이 운명하고 말았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제공>

 마침내 해방 67년 만에 일제 피해자들 대한 배상의 길이 열렸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24일 일제 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과 관련,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항소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판결은 피해국가에서 첫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향후 일제 징용 피해자 관련 소송에 파장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일본과 캐나다·미국·중국 등지에서 일제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돼 패소 판결은 있었지만, 피해국 사법부에 의해 전범기업에 손해 배상 소송 판결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소로부터 12년에 걸쳐 이뤄진 대법원 판결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미쓰비시중공업 히로시마조선소에서 강제 징용 피해를 입은 이근목 씨(작고) 등은 일본에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하자 한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부산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있는 것에 착안해 재판을 제기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전범기업을 한국 법원에서 다룰 수 있느냐가 첫 번째 쟁점이었다. 1심 재판부는 대한민국 법원에 국제재판 관할권이 있고, 일본 최고재판소에 계류된 사건과 관련 중복제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소멸시효가 지났고, 확정 판결된 일본 법원의 판결을 승인하지 않을수 없다는 기판력에 의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원고 측은 “일본 판결은 한일 강제병합이 합법적이고 강제동원 역시 관련법에 의해 이뤄졌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강제 병합 역시 합법적이라는 얘기이냐”며 반발해 왔다. 재판부 논리대로라면 일본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데, 일본이 주장하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인정해야 하느냐는 것.

 한편 이 사건은 본안 소송 과정에서 40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하도록 해 일제피해자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는 등 크나큰 성과를 남긴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재판 과정 중 한국정부가 한일협정 문서의 공개를 거부해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한일협정 문서 공개소송이 제기돼, 결국 2004년 서울행정법원이 관련 문서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통해 그동안 정부가 피해자들의 권리를 방치해 왔다는 도덕적 타격을 입고 결국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상규명위원회를 출범시키게 됐다.

 신일본제철 소송 역시 같은 이유로 1심, 2심 연거푸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런 한국 내 분위기에 편승해 최근까지 이들 기업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

 신일본제철은 “얘기 한번 할 기회를 달라”며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일본까지 건너 간 피해자들의 거듭된 요청조차 차갑게 거부하며 아예 회사 출입조차 못하게 문전박대 했다.

 일제강점기 무려 10만 명을 강제동원한 미쓰비시중공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한 협상에 응하겠다고 하면서도 3년에 걸쳐 15차례 이어진 교섭 자리까지 “이미 재판도 끝났다. 보상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실로 무성의하고 오만한 태도 그 자체였다.

 역사에 기록할만한 이번 선고로 이제 대일 과거사 관련 소송에 새 역사적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이번 판결은 한마디로 피해국가에서 해방 67년 만에 가해국 전범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역사적 쾌거라 하겠다.

 이번 판결은 반인륜적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안겼으면서도 해방 67년이 되도록 사죄는커녕 임금까지 떼먹은 일제전범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된 것으로, 앞으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큰 파장이 예상된다. 근로정신대 협상 역시 큰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소송 사건 을 하필이면 한국의 최대 토종 로펌이라고 불리는 ‘김앤장’이 변호하고 나선 것은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돈이라면 피도 눈물도 없고, 영혼까지 파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돼 오기도 했다.  이국언 road819@hanmail.net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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