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동 연가]제40회 도박의 늪에서

 #89 동진은 지리산에서 2박3일 동안을 떠나간 아내를 떨쳐내려고 몸부림을 했다. 하지만 답을 구하지 못했다. 그 또한 시간이 지나야 되리라는 말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연곡사에서 동진은 공중전화부스로 들어갔다. “어~이, 필영인가? 나 동진인데 지리산에 왔다가 하산하려 하는데 잘 지내는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부터 빠져 들어간 고스톱이 치고 싶어서였다. “그랬능가? 오늘밤부터 전투가 있는데 한번 붙어 볼랑가?” 동진이 기다리던 대답이었다. “응 그래 장소는 어딘가? 아, 참 그런데 머니가 없어서…” 말끝을 흐리자 필영이가 “어~이, 장소는 백운광장 근처 남흥장이고, 자금은 종철이가 대고 후 결재하기로 했으니 염려 마시게”하고 대답한다. 동진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피아골을 내려갔다.

 동진은 산을 내려오면서부터 전투를 앞두고 마음을 다잡았다. 2박3일이 걸릴지 4박5일이 걸릴지 모르는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마음의 각오가 중요하다. 이번 전투에서는 꼭 승리하여 연줄처럼 걸린 빚도 좀 갚고 아이들 용돈도 손에 쥐어주고 싶었다. 광주 톨게이트를 지나자 동진이 마음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집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남흥장을 향했다. 해가 서쪽 하늘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백운광장은 귀가를 서두르는 자동차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구부러진 고가를 끼고 돌아가자 모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남흥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내원은 기다렸다는 듯 605호라고 알려준다. 남흥장은 지은 지가 오래되어 엘리베이터도 없다. 퀘퀘한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605호는 맨 꼭대기 층 맨 끝 방에 있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단속을 피하려 일부러 이런 방을 잡은 것 같았다. 똑~똑, 동진은 가만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바로 응답이 왔다. 오늘 전투할 멤버임을 확인한 셀파 종철이는 가만히 문을 열어준다. “어~이 동진이 오랜만일세.” 아까 전화했던 필영이가 손을 들어 반긴다. 미8군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필영이는 죠지 벤슨의 기타연주를 곧잘 흉내 내는 이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기타 잽이다. 천상 끼가 계집과 화투를 좋아하는 자칭 ‘자유인딴따라’다. 동진은 대답대신 손을 가볍게 들어 답례를 했다. 방안에는 필영이 말고 고스톱의 대가라는 이동기, 그리고 동진과 함께 맨날 봉이 되는 광주의 이봉조라는 색소폰주자 김완규, 맨 날 바람만 잡아놓고 이리저리 잘도 빠져나가는, 그래서 별명이 ‘놀부’라는 ‘희방’이가 느글느글한 웃음을 웃고 동진을 반긴다. 이밖에도 보신탕집을 하는 박민영, 캬바레의 황제 춤꾼 광식이 등이 함께 있었다. 모두들 광주에서는 한가닥하는 연주자들과 춤꾼들이다.

 오늘 전투를 주관한 종철이가 일장 연설을 한다. “에~ 오늘 전투의 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판돈은 공히 오백만원씩이고요. 이 중에 두 분이 떨어지면 게임은 종료됩니다. 시간은 제약이 없고 점당 만원씩이고요, 쌍피는 석장입니다. 화투교환은 선수들이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의문난 점이나 질문 있으면 하십시오.” 화투를 만지작거리던 동기가 “그란디 나눠준 돈은 언제까지 갚아야 되나요?” “아 예, 돈은 3일의 말미를 줍니다. 그때가 지나면 이자는 일할입니다. 아셨죠?” “에~이 너무한다. 아무리 노름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이런 비싼 이자가 어디 있어?” 완규가 한마디 한다. “이 규칙에 따르지 못하시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신 분은 지금 당장 퇴장하십시오. 저도 비싼 이자주면서 빌린 돈이거든요. 그러니 뒷말 하시려면 빠지세요.” 제법 위압조다. 하지만 정작 이 룰이 부당하다고 빠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남흥장 전투는 시작되었다.

 새벽이 되자 동진은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할당받은 오백만원은 그런대로 현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럿이서 줄 담배를 피운 탓에 방안 공기는 담배연기로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두 눈이 벌겋게 충혈 되었다. 현상만 유지하고 있어서 몸만 축이나지 시간이 아까웠다. 동진은 특단의 비방을 생각했다. 셀파 종철에게 “젠장 시간만 보냈지 도대체 끝발이 나지 안 나서 죽겠구만, 따든지 털어버리든지, 차나 한잔 시키게” 종철은 곧바로 전화로 차를 불렀다. “화신다방이지요? 여기 남흥장 605호실인디, 따뜻한 커피 여섯 잔에다 쌍화차 두 잔이요. 빨리 부탁해요. 글고 이쁜 아가씨 시켜서 보내세요.” 차를 시킨 지 얼마 안 되서 반바지에 하얀 부라우스를 입은 아가씨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돌려가며 차를 따른 아가씨는 종철의 귀엣말을 듣고는 동진에게 옆방으로 가자고 눈짓한다. 동진은 실로 오랜만에 젊은 아가씨를 품었다. 그는 아가씨의 복사꽃 같은 희붉은 살결을 보는 순간 불같은 욕정이 솟아났다. 젖무덤을 더듬으며 동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아주 천천히 아가씨의 살을 파고들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잊은 채 마치 자신들이 무능도원의 선남선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진과 아가씨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길고 찌릿한 정사가 끝나자, 다방 아가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옷을 입고 간단히 목례를 하고는 옆방으로 가서 종철과 계산을 끝낸 후 총총히 사라졌다.


글=민판기, 삽화=정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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