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박채란 지음 / 사계절

 아이들 사이엔 `요절 클럽’이라는 모임이 있단다. 이름 때문에 걱정이 앞섰는데, 진짜로 죽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왜 죽고 싶은지, 얼마나 죽을 만큼 힘든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를 받는 모임이라고 한다. “공부하는 게 죽기보다 싫어, 그냥 딱 죽고 싶어.” “부모님은 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내가 죽으면 그제야 이해해 줄까?” “지금 내 모습이 싫어. 이런 모습으로 죽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가장 아름다운 때에 생을 마감하는 `요절’이란 말의 드라마틱함이 아이들을 끌어당기기도 했겠지만, 아이들은 그런 방식으로 고민을 토로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고민한다. 아이들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이 너무 힘겹고 벅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고민과 혼란이 아이들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마땅히 필요한 성장통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장소설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는 죽음을 이야기할 때가 사실은 가장 뜨겁게 살고 싶을 때라는 걸 잘 보여준다.  

 `베프’도 아니고 `절친’도 아니지만 자살소동을 벌이기 위해 일시적으로 의기투합한 아이들과 자신이 천사라고 말하며 이들의 자살시도를 방해하는 하빈이 이야기다.

 학교의 여장부로 모든 문제의 해결사인 태정이, 매력적인 외모로 늘 남자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새롬이,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공부벌레 선주는 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쉬운 삶은 없고, 누구나 자신만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이 책은 진실되게 보여준다.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빠지만, 열여덟 살 생일에 함께 낙타를 타러 사막에 가기로 한 그 약속을 잊지 않았기를 바라며 태정이는 맏딸로서 무거운 책임감도 감수해 왔다. 그런데 아빠는 점점 더 멀어져 갔고 그 약속을 까맣게 잊었다. 한편 대학생 오빠에게서 `그만 만나자’는 선언을 듣고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은 새롬이는 `감히’ 자기를 찬 것에 대해 불타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소동을 벌인다. 또 선주는 언니의 죽음이 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과 냉정하고 빈틈없는 엄마에게 품고 있는 반감으로 늘 뾰족하게 날이 서 있다. 자신이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던 아이들은 비로소 죽음과 대면함으로써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깊이 보듬고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씩 발견한다. 

 자살은 다만 시도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시도는 지금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욕구에 다름 아니라는 것! 그래서 아이들은 등장인물들에게 깊은 공감과 격려를 보냈다.

 특히 엉뚱하지만 다른 세계를 아름답게 통찰하는 안전요원 하빈이를 통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이 바로 그 영혼이 이미 알고 선택한 것이라는, 그렇기에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하빈이가 정말 저쪽 세계에서 온 안전요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미스테리한 감정은 이 책의 은근한 매력이기도 하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목요일, 사이프러스’라는 간판을 발견하면 아이들에게 기쁘게 들어오라고 얘기했다. 내가 거기서 너희들을 맞겠노라고. 그랬더니 아이들은 서로 사이프러스 2호점을 내겠다고 웃으며 화답했다. 누군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곳, 그래서 지친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사이프러스 같은 공간을 만날 수 있기를. 그곳을 일구고 가꾸고 싶다는 작은 꿈 하나가 반짝 고개를 든다. 


정봉남


 정봉남 님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주인 되는 영토를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오래 걸었습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의 꿈속에 고래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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