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동연가 제 48회

 #102 노래를 끝낸 수희의 눈가엔 물기가 맺혀있다. `한 곡 더!’ 객석에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린 손님이 나지막이 앙코르를 청한다. 목이 풀린 수희는 천재시인 박인환의 시에 곡을 붙인 `세월이 가면’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앞에 불렀던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와는 사뭇 다른 음색이었다. 정갈하면서도 고혹적이었고, 때로는 애간장을 찢는 듯했다. 약간은 쉰듯하면서도 청량한 느낌이 묻어있는 음색은 가을의 고독을 온몸으로 받아들여다가 폐 속에 깊이 빨아들였다가 녹여내고 있었다.

 수희가 노래를 마치고 들어가자 갑자기 홀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배우수업은 젊은 대학생들이 주 고객들이었다. 그런데 중년을 넘긴 아줌마 너댓 명이 무리지어 들어왔고, 그들은 좌석에 앉자마자 사장을 찾았다. 영문도 모르는 수희는 얼굴의 땀을 닦고는 밖으로 나왔다. 카운터 옥란이 겁먹은 표정으로 “언니, 그쪽으로 가지 마세요!”한다. 홀 안에서는 여자들과 종업원들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내 딸 수희가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데, 빨리 내놓으세요!” 수희는 의상가방을 둘러매고 홀 밖으로 나오려다 자기 이름이 불리는 것에 놀라 고개를 돌려 그 중년 여인들을 곁눈으로 보았다. 수희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어두컴컴한 홀 안이지만 수희가 본 여인들 속에 낯설지 않은 한 여인이 있었다. `아뿔사! 우리 엄마가 드디어 나를 찾아 나섰구나!’ 직감한 수희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녀는 도망치듯 홀을 빠져 나왔지만, 꿈인 듯 스친 엄마의 얼굴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수희는 다시 홀 문 앞으로 다가갔다. 홀 안에서는 찬송가가 들렸다. `큰 풍랑이 이 배를 위협하며/ 저 깊은 물 입 벌려 달려드나/ 이 바다에 노 저어 항해하는/ 이 작은 뱃사공은 주님이라…’ 수희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잡혀서 다시 서울로 끌려가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렇다고 그 대책 없는 영업방해를 중단할 사람은 자기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조용히 홀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 나야, 수희야!” 수희어머니는 찬송가를 부르다 말고 수희를 처다 보더니 “응 ~그래, 우리 딸 수희가 맞구나”하고 잠시 얼굴을 만지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곧추 세우며 “수희야, 너 잠깐 여기 앉거라”한다. “엄마, 뭐해! 여긴 영업집이야. 빨리 나가! 영업방해하지 말구, 빨리 나가자구!” 수희는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여기 사탄이 우리 딸을 이렇게 만들어 놨구나! 사탄아, 물러가라!” 수희 엄마는 “이러시면 안 된다”는 웨이터들을 밀치고 또 찬송가를 불렀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엄마가 찬송가를 부르자 같이 온 여인들도 따라서 부른다. 노래가 끝나자 엄마는 수희 머리에 손을 대고 통성기도를 시작한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손님들은 몇 마디 불만의 말들을 내뱉으며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수희 엄마는 아랑곳 하지 않고 기도를 계속한다. 수희는 넋을 잃은 듯 엄마가 시키는 대로 머리를 맡기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죄 많은 우리 딸을 용서하십시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아무 이유도 없이 가출을 해, 소식이 없었는데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여기서 딸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 딸이, 사탄의 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불쌍한 우리 딸을, 빨리 이 지옥에서 구워하여 주시옵소서!” 엄마의 기도를 따라 같이 온 아줌마들도 주시옵소서!를 복창한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기도를 시작한다. “사랑하는 주님! 불쌍하고 죄 많은 우리 딸을, 주님의 넓으신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주님의 종으로 다시 귀하게 쓰시옵소서. 간절히 원하옵기는…”

 자기를 위해 기도를 하는 엄마의 기도가 수희의 귀에는 단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수희 어려서부터 자식보다는 자기들 체면 구길까봐 더 행동에 제약을 했고, 교회에 나가서는 온갖 친절을 다 떨고, 집에 와서는 밥하는 아줌마는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냉정한 부모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기들만을 위해 존재하고 타인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다른 종교나 이념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조적인 부모님! 세상 사람들은 이런 보모님을 다 훌륭하다고 떠받든다. 이런 부모와 함께하기 싫어서 가출을 했다. 수희는 그 사이에 반가운 마음이 싹 사라졌다. 통성기도가 끝나자 수희 엄마는 사장을 찾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오른 사장은 “아니, 남의 영업집에 와서 이 무슨 짓이요!” 수희엄마는 사장과 눈이 마주치자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누가 이런 술집을 차려놓고 젊은 것들을 유혹하느냐! 사탄아, 물러가라!”하며 목청을 높였다. “뭐요? 이런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것들이 다 염병 지랄 허네!” 사장은 그렇게 내뱉고는 전무를 불러 “야, 불 켜! 그리고 소금 뿌려라. 재수 없는 것들 모두 들어내!”  “저런 나쁜 놈 보았나? 저러니까 지옥에 가지, 회개해라, 회개해!” 수희 엄마도 지지 않고 대 든다. “손해배상 청구하기 전에 빨리 꺼져! 빨리 안 나가면 경찰 부를 거야!”

 글=민판기 삽화=정승욱


 민판기 님은 마을 공동체의 힘으로 세상을 바닥까지 환하게 비추려는 사람이다. 주민자치의 숨결 속에서 삶의 내밀한 의미를 건져낸다. 송화마을에서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문화난장을 열고, 송화공부방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키운다. 뒤틀린 세상에 던지는 그의 질문은 늘 삶의 정곡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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