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네)

 - 폐하께서 권좌에 오르실 때 도와줬던 사람들을 이제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 (이)상득이형은 영일대군, (최)시중이는 방통대군, (박)희태는 백성대표의 대장노릇을 시켜주었지 않았느냐? 영일대군께서는 스스로 물러나셨어도 장롱 속이 가득하니 괜찮을 것이고, 방통대군은 떵떵거리며 사셨고 지금은 공짜 밥까지 드시니 되었지. (이)재오는 그대로 백성대표 해먹고 있고. 더 챙길 양반들이 있더냐?

 - 양반만 챙길 것이 아니라 상놈도 챙기셔야지요. 가락시장 목도리 할머니,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 그리고 청년백수가 선거 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습니까?

 - 아, 그때 짐이 날씨도 추운데 가락시장까지 가서 목도리를 걸어주었지. 재래시장 붐비게 해주고 좌판 상인도 나아지게 해 달라고 했던가?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체제야. 짐이 재래시장만 도우면 자유 시장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되고, 좌판 상인은 불법 아니냐?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도 ‘쌈박질 그만해라, 이놈아’고 감히 짐에게 욕설을 했지만 짐은 꽁하지 않았다. 국가원수모독죄로 확 집어넣을 수도 있었지만. 국밥 푹푹 퍼 처먹고 경제나 살리라고? 짐이 쌈박질 안 하려고 귀 딱 막고 쭉 밀어붙였고, 경제도 살렸지 않느냐? 서민의 경제가 아니라 재벌의 경제이긴 하다만. 어느 쪽이든 살려놨잖아. 청년백수도 스스로 찾고 힘닿는 대로 살아야지, 영계 좋아한다는 (김)성주도 젖 먹이면서 스스로 진생쿠키 만들었다고 하잖아.

 - 그때 그들은 폐하의 서민 ‘연기’를 도드라지게 만들어서, 폐하를 폐하로 만드는데 큰 몫을 하였습니다. 지금 월세도 못 내고 기초생활수급비로 살며 일자리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하니 큰 아량을 베푸셔야 합니다. 백성은 말 먹이는 일과 같아서, 백성을 부리려면 먹이를 주어야 합니다.

 - 선거 때는 무슨 말인들 못하고 무엇인들 못 하겠느냐? 양잿물이라도 마셔야지, 양잿물은 마시면 죽으니까 그것은 안 되겠구나. 아무튼 우리 식구들은 연기를 잘하지? 배우를 했어도 어마어마했을 거야. (이)상은이형도 말짱하게 외국 갔다 오더니 특검 나갈 때는 비틀거리며 부축 받는 것 봐. 다음부터는 대종상영화제 후보에 꼭 우리 식구랑 정치인들도 넣으라고 해야겠다. 그런 기막힌 연기에는 상을 주어야 마땅하느니라. 따로 영화 안 만들어도 대종상은 떼 논 당상이겠네. 국정감사를 열면 외국으로 줄행랑을 치는 녀석들도 다 ‘연기’야, ‘국감 회피’ 연기. 회피하면 또 ‘연아 회피’가 으뜸이지. (유)인촌이도 예술의 전당을 야무지게 그만 두잖아. 걔는 뭐, 배우니까.

 - 그래도 자꾸 외국 나다니는 것은 (이)인제 꼴 나기 쉽습니다. 그는 옛날에 유력한 폐하 후보였는데 지구를 한 바퀴 반 돌다보니 그리 됐다고 하잖습니까? 그러니 식구들을 지키셔야 합니다.

 - 나름, 지키고 있다. 우리 아들을 오라 가라 하니까 화가 솟잖아. 그래서 특검에 돈을 안 줬어, 빈손으로 해 보라고. 생각도 못 했을 거야, 하하. 또 아들을 다시는 부르지 말라고 했지, (이)상은이형도 오늘 간다 내일 간다 말을 바꾸지, 아들도 이랬다저랬다 그러지. 특검 걔들, 날짜만 지나면 아무 힘도 없어.

 - 폐하, 이랬다저랬다 하면 아니 되옵니다. 그러는 사람에게는 판사가 노망든 줄 알고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막말을 해댑니다.

 - 그런가? 그런데 아휴, 내가 살아갈 땅을 내가 산 것 가지고 왜 난리들이야? 왜 나만 갖고 그래? 죽 쒀서 나도 못 먹고 개도 못 주고, 땅바닥에 다 쏟은 꼬락서니네. 이거, 참, 땅바닥에 쏟은 것을 핥아 먹을 수도 없고, 크~음.

 - 아니, 그럼 내곡동 집터를 살 때 폐하께서 다 오케이 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 너도 참, 네 집 살 때를 생각해 봐라. 그 터가 좋은지, 얼마인지도 알아야지, 어떻게 지을까도 살펴야지. 나 죽으면 세금 안 내고 물려줄 방법도 찾아야지, 얼마나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느냐? 너라면 그냥 돈 획 던지면서 아랫것들한테 ‘니 맘대로 하세요.’ 하겠느냐?

 - 쉿, 폐하! 목소리를 낮추소서. 지금 큰 일 날 소리를 하고 있사옵니다.

 - 무엇이 큰 일 날 소리냐? 식민지배한 일본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떠들어도 아무렇지 않고, 독재의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살렸다고 지껄여도 아무렇지 않는 세상이다. 아무리 학생인권조례가 있어도 학칙에 두발 제한 규정을 두면 가위질을 하는 세상이란 말이다. 법과 도덕이 뭉개졌다. 정권만 잡으면, 돈만 많으면 법도 필요 없다. 힘 있는 자가 목소리 크게 떠들면, 법이 그 목소리를 받들고, 주먹이 그 목소리를 지키는 세상이다. 안 통하면 조인트를 까면 되니 너는 걱정마라.

 - 법과 도덕은 뭉개진 것이 아니라 폐하께서 새로 만든 것이옵니다. 그렇더라도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말씀을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간은 배 속에 있어야 안전하옵니다. 유신이 자주국방을 달성하려 한 것이라 할 때, 폐하께서는 4대강사업이 홍수예방이라 하셔야 합니다. 유신 없이는 공산당의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할 때, 폐하께서는 4대강사업 없이는 재벌의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하셔야 합니다. 유신으로 자주국방을 이루었듯이 4대강사업으로 홍수예방을 이룩했고, 유신으로 공산당의 밥이 되지 않았듯이 4대강사업으로 재벌의 밥이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셔야 하옵니다.

 - 교회도 젊은 여성 사진을 싣고 `여자 친구 있어?’, `소개팅 해볼래?’, `어떤 스타일이 좋아?’하고 꼬드기더구나. 마음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유신이 아니라 일본강점기라도 끌어다 써야지.

 - 어, 아까 그것이 교회였어요. 저는 결혼정보업체인 줄 알았어요. (휴, 유흥주점인 줄 알고 저녁에 예약할 뻔 했네. 폐하는 꼼꼼하게 보셨네. 여자 사진이라서 그랬나?)

김요수 ghomsol@hanmail.net

김요수님은 월간 샘터에 2년 동안 연재했으며 <딱좋아 딱좋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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