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를 위한 변명

<사진설명>Marilyn 1967 (10개의 연작 중 2번째 작품)

published edition, 166/250

screen print on paper, 91.4×91.4cm

The Andy Warhol Museum, Pittsburgh.


 1970년대라고 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잘생긴 남자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그 작품성에 비해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외모가 중요한 세상이지만, 외모를 자랑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우리들의 평가는 양극단을 달린다. 솔직히 남자인 나는 최근 뜨고 있는 김수현이라는 남자 연예인이 그리 잘생긴 건지는 모르겠다. “그 정도는 보통 아니야?” 이런 멘트를 날리면, 돌아오는 것은 여성들의 비난뿐이다.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그래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만, 남자 연예인들에 대한 여성들의 사랑은 우리 남자들이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북돋워야 한다. 여성들의 힘에 대한 굴복은 아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 보통남자들이 여자 연예인들을 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클라라는 최근 남자 연예인인 김수현 이상으로 뜨고 있는 여자 연예인이다. 이 정도면 한국남자들의 섹스 심벌 정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나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님을 분명히 명기하는 바이다.) 기존의 여자 연예인들이 김태희·이보영으로 상징되는 청순한 스타일이었다면, 이제는 클라라와 NS윤지처럼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드러내는 당당한 아름다움이 인정받는 시대로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대중이 원하는 것, 그게 예술

 클라라는 두산과 LG의 야구경기에서 몸매가 다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시구해 한 순간에 전 국민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순간은 거의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마 남자들에게는 미국에서 도망 온 윤창중이 기자회견할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은 보수당의 최고위원이 신성한 국회의사당에서 정책연구를 위하여 스마트폰으로 누드사진을 검색하고, 거짓 해명하는 것이 용서받고 그냥 지나가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몸을 당당히 드러내고 자랑하는 클라라의 태도는 1967년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못지않은 문화적 충격파를 던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보지 못하는 클라라와 NS윤지의 공통점은 그들이 미국에서 자라고 미국의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제일 부러운 점은 자신에게 당당하고 자신의 삶을 충분히 즐기는 자세다. 미국에서는 가슴골이 파이는 여성들의 옷은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그러한 의상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목까지 올라오는 옷을 입고도 허리 숙여 인사할 때 가슴 위를 가리는 동작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심지어는 소녀시대같은 아이돌조차 그러하다. 미니스커트 저리가라 할 정도의 핫팬츠를 입고 나와서도 그러하다. 겸손과 청순의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만약 여성들이 주로 보는 일일연속극이나 CF의 단골 주연인 김태희나 이보영이 클라라와 같은 옷을 입고 나왔으면 그들의 인기는 급하락할 것이 분명하다. 주 고객층인 여성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장담컨대 클라라나 NS윤지는 일일연속극에 출연한다 하더라도 성질머리 나쁜 부잣집 딸 같은 악역 이외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주 고객을 무시한 죄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는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이었다. 클라라는 마릴린 먼로에 비하면 아이일 뿐이다. ‘백치미를 지닌 금발의 여인’이라는 이미지는 그녀가 아니라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이미지었으며, 정작 그녀는 그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정으로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를 원했던 여자였으며, 당시 미국을 광기로 몰아가던 매카시즘에 반대했던 지적인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대중의 환상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외로웠던 그녀의 삶을 지탱해준 것도 대중의 사랑이었다. 1962년 그녀가 37살의 나이로 약물중독으로 사망하고 그녀는 미국인의 영원한 연인이 되었다.

 

 젊음과 자신감, 감상할 자유도 허하라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영화 속 한 장면을 판화작품으로 만들어 그녀를 남성들의 영원한 연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단순히 그녀의 섹스어필한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통해 그녀의 삶과 죽음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데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만약 이 작품이 하나만 만들어졌다면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앤디 워홀은 미술작품을 상업화한 작가로 유명한데, 그러기 위해서 대중매체에 널리 알려진 공산품, 정치인, 연예인 등의 각종 이미지들을 갖다 썼다. 판화도 자기가 찍은 게 아니라 조수들을 고용해서 찍어냈다. 그게 미국식 팝아트였다. 마릴린 먼로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시스템, 또한 앤디 워홀을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미국의 팝아트는 묘하게도 대중적 예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를 복제하여 모든 사람이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대중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대중예술이란 값싸 보이지만, 생각보다 싸지는 않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고가를 형성하고 있다. 작품가격도 그렇고 내용에 있어서도 그렇다. 대중예술에는 정치적인 자유, 사회적인 자유까지도 담아낼 수 있다.

 대중들이 김수현을 좋아하고, 클라라를 좋아하면 안 되는가? 우리에게도 앤디 워홀같은 미술작가가 있어 클라라의 그 전율적 순간을 화폭에 담으면 안 되는가? 클라라에게서 보는 것은 그녀의 몸매가 아니라 그녀의 젊음과 자신감이다. 우리에게도 그녀의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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