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삶 그리고 정선아리랑

▲ 하봉호 작 `화암별곡’, 모니터 150개, 가변 설치, 2013

 초겨울 한파가 몰아친 날, 가도 가도 굽이굽이 산골인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에 다녀왔다. 광주에서는 8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살면서 강원도 정선에 갈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관광전문가나 오지를 좋아하는 여행자 아니면 가볼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정선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1980년대까지 탄광이 주요 수입원이었지만, 이제는 관광이 군 전체의 모토이다. 정선 아리랑과 아우라지 강변은 산골마을의 애환을 담은 이 지역의 대표적 관광자원이다. 그러나 강물은 낮은 곳을 흐르는 것이고 이 지역의 대부분은 높은 산지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골은 낭만이 아니라 적막과 추위와 어두움이었다. 오후 5시가 되면 이미 밤이 되고, 마을 식당이나 슈퍼도 문을 닫는다. 닫는 이유는 간단하다.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손님 이전에 사람이 없다. 정선에서도 오지인 화암면은 화암동굴이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지만, 여름 한철 관광객들은 동굴 관광만 하고 갈 뿐 다른 곳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화암마을은 이런 정선에서도 잊혀진 곳이었다.

 

 강원도 정선의 오지마을 화암

 이곳에서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열렸다. 마을미술프로젝트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와 해당 지자체가 주관하는 사업으로 생활공간을 공공미술로 가꾸는 사업이다. 사업 초기에는 작가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대표적인 공공미술 사업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사업비 매칭 방식인데 국비를 5억 원 정도 받으면 지방비를 10억 원 정도 투자해야 한다하니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로서는 울며 겨자먹기가 아닌가 싶다. 서울시나 부산시에서 10억 원 쓰는 것과 정선군에서 10억 원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기왕에 좋은 의도를 가진 문화사업이니만큼 공공미술이 필요한 열악한 지역재정의 사정을 감안하여 지방비 부담을 줄이고 국비를 늘리는 시스템이 간절히 필요하다.

 더군다나 마을꾸미기 공공미술사업은 필연적으로 마을 주민간의 갈등을 유발한다. 마을 잘 되자고 하는 일인데, 어디에서나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이 발생한다. 한전의 밀양 송전탑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갈등이다. 주로 외부에서 돈이 유입되므로 더 가지려고 하는 지역주민들이 반대를 한다. 반대를 함으로써 생기는 이익을 노리는 것이다. 작가들은 주로 외지에서 오므로 지역주민들의 찬성과 지지가 없이는 사업을 수행할 수가 없다. 다행히 대부분의 주민들이 찬성을 하여 마을대표가 추진위원장을 맡아 비교적 원활히 사업을 수행하였다. 주민들은 마을 환경개선은 물론 관광유발로 인한 수입증대를 원하고 있었다.

 

 오지마을서 펼쳐진 공공미술사업

 화암(畵岩). 그림바위란 뜻이다. 이런 이름 덕분이었을까? 이름 잘 지은 조상을 둔 화암마을에 대규모 공공미술작업이 펼쳐졌고 이제 이곳은 ‘그림바위마을’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조관용 미술평론가가 감독을 맡고,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35명의 미술가들이 2013년 3월부터 12월까지 이 마을꾸미기 작업에 동참하였다. 장담컨대 이들의 작품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준이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 작업을 한 것이 아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저 미술창작을 한다는 것이 좋아서 그 산골에서 자기 시간과 자기 돈을 쓰면서 작업을 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미친 사람들이다. 그 예쁜 광기가 봄부터 겨울까지 계속되어 작품으로 남았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그 중 한 작품으로, 필자의 소견으로는 21세기 미디어아트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번쩍번쩍한 화면만 있지 ‘내용’과 ‘감동’이 없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작품은 영혼이 있는 작품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 한 점을 만들기 위해 지난봄부터 작가는 정선군 화암마을에서 살다시피 했다. 화암마을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이 한 작품에 압축돼 담겼다. 작가는 화암마을을 담기 위하여 화암의 할머니들을 일 대 일로 찾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들의 앨범을 보고,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과 이야기들, 노랫가락들을 담았다. 개나 닭 같은 마을의 소소한 풍경들, 나무들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들도 담기고, 할머니 가족들의 옛날 사진들이 함께 담기었다.

 

 화암마을을 담은 미디어아트

 꺼져있던 150개의 모니터에서 이름 모를 흑백사진들 속 인물들이 각자 명멸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학생모를 쓴 사람. 결혼식 사진. 젊었을 적의 추억들. 거대한 화암마을의 기록들이다. 흑백의 인물들이 사라지고 병아리를 거느린 닭이 모이를 쪼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어두운 화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가운데, 술 한 잔 걸친 할머니들의 유행가가 흘러나온다. 그 순간 봄부터 찍은 화암마을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현재 화암마을의 모습이 합쳐진 소음과 함께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자연풍경은 디지털적인 색상으로 단순화된다. 그 디지털의 삼원색도 회색빛으로 바뀌는 순간. 150개의 모니터는 한 할머니의 얼굴을 구성하는 조각들처럼 할머니의 얼굴로 하나가 된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할머니의 노랫소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 속에 모두에게 소외된 화암마을의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 화면은 다시 빗방울 떨어지는 장면으로 일제히 바뀌며 자연의 파란 색에서 과거의 흑백의 색으로, 그리고 어두운 침묵의 색으로 바뀐다.

 요약컨대 작가는 가장 현대적인 매체와 방법을 이용해서 정선 화암마을과 할머니의 모습을 담았다. 아마 정선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 이런 수작이 다시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이 작품의 위대함은 정선을 뛰어넘는 보편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다. 정선은 소재일 뿐 작가는 한국인이면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애환(哀歡)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담은 것이다. 작가가 발로 뛰고 가슴으로 느낀 6개월의 결실이었다. 혹시라도 강원도에 갈 기회가 있는 분은 정선의 화암마을에서 강원도의 정취를 느껴보시기를 권한다.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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