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회가 건강한 개인 만든다

▲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3.23 ~ 1980.3.18)

 프롬은 ‘사랑의 기술’ ‘자유로부터 도피’ 등으로 널리 알려진 저술가이다. 그의 저서는 한때 한국의 민주화과정 과정에서 독재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해주는 책으로 인기가 있었다. 비록 그 시기에 마르크스 사상을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 심리치료자로서 마르크스 사상을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풀어서 전달했기에 금서로 취급되지 않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였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휩싸인 지금, 좌파 논쟁으로 국론이 분열된 지금 묵혀있던 그의 정신을 다시금 되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행복한 세계를 꿈꿨던 청년

 

 프롬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정통 유대교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랍비였던 할아버지, 탈무드 학자였던 삼촌 등 유대교 전통 속에서 성장하였다.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접했던 프롬은 모든 사람들이 의좋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프로이트가 한니발 장군과 동일시하면서 유대인의 해방과 독립을 꿈꾸었던 반면 프롬은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그는 16살 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십대 소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홀아버지였던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파혼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와 함께 묻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하였다. 이 사건은 지나쳐갈 수 있는 사소한 사건일 수 있지만 청소년기 프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행동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남기는 사건이 되었다.

 광적인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자신이 경험한 삶의 모순 등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다양한 영역의 공부를 한다. 그는 종교를 범신론적으로 재해석하고,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 실존주의, 불교 등 다양한 학문을 통합하려 노력한다. 현대의 어느 학자도 이처럼 서로 이질적인 학문영역과 이론 등을 통합하려 노력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비록 심리치료 영역에서 인본주의로 명명되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인본주의라 부를만하다.

 

 사회가 개인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

 

 많은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한 개인의 정신적 건강은 사회적인 원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학, 심리치료, 상담심리 등의 학문은 그러한 상식에서 멀리 떨어져 도통 관심이 없다. 이는 심리치료라는 학문이 심리적 문제의 원인과 개입방법 등을 개인 내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대 심리치료의 흐름이 점점 인간의 본성과 가치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고,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관점에서 효율성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 한국의 심리치료자들에게는 초기 심리치료자들이 지녔던 사회적 문제의식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국가나 사회에 의한 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스트레스(stress) 혹은 외상(trauma)이라고 하는 범주를 통해 객관적 질병처럼 취급해버린다. 도박도 도박 사업을 활성화시킨 이후에 그로 인한 문제를 ‘중독’이라는 질환 딱지를 붙여서 그들을 상담하라고 한다. 마치 그들을 자신의 통제와 절제를 하지 못한 무책임한 사람처럼 취급한다. 우울이나 자살도 그들의 의지력이 부족하거나, 사회적 지지체계가 부족해서 생긴 것처럼 이야기한다. 한국의 사회체계가 비경쟁적이며, 안전한 사회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상담자가 투입된다 해도 자살을 줄이지는 못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도박중독치료, 자살방지사업 등이 해당 문제를 줄이지 못하면서 치료자의 인건비만 증가하는 현상을 보면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한 개인의 복지와 안녕에 관심을 지닌 심리치료자, 상담자라면 한 개인을 상담하는 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자살하게 하는 교육체계와 경제제도, 도박중독을 양산하는 도박 산업, 민간인 사찰이나 시위진압 등으로 심리적 후유증을 만드는 폭력적인 조직을 상대로 비판의 화살을 돌려야 한다.

 프로이트가 한 개인의 심리적 건강에만 관심을 가졌던 반면에 프롬은 사회의 건강과 그와 연관된 개인의 건강에 관심을 가졌다. 프롬은 프로이트 이론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이론은 그 사회의 문화, 이념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한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이해하려면 그 사회가 그 개인의 정신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봐야 된다고 주장한다.

 

 비정상 어른이 건강한 학생 망칠라

 

 최근 모 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학교에 ‘안녕하십니까?’라는 자보를 붙였고, 그 학교에서 자보를 철거한 후 해당 학생이 교칙을 어겼기 때문에 학교지도위원회 등을 열어 상담·지도 방안 등을 논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는 마치 비정상적인 어른들이 건강한 학생을 망치겠다고 설치는 모양새다. 모든 학생들에게 이 미친 세계에 함께 적응하면서, 미치지 않은 것처럼 살자고 코미디를 하고 있다.

 프롬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 사회가 건강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것은 단지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 적응한 것뿐이다. 더 많이 배운 어른들(교과부와 교육청과 일부 교사들)이 어린 고등학생들의 도덕의식 정도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 개인의 정신적 ‘안녕’이 사회의 모순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청소년, 청년들의 외침을 심리치료자와 교사 그리고 모든 사회가 귀 기울어야 할 때이다. 그들에게 그만하라고 제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미안하다’고, ‘고생했다’고 말할 때이다. 그리고 ‘나도 함께 하겠다’고 함께 어깨를 둘러맬 때이다.

정의석 <무등지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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