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풍파 속에 서 있는 의연함

▲ 차규선 작, 풍경, 185×60cm, 캔버스에 혼합재료, 2007.

 강원도는 태백산맥이 있어 예부터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지도 않았고 기후도 변화무쌍하다. 강릉(江陵)의 ‘강’자와 원주(原州)의 ‘원’자를 따서 강원도(江原道)라 한다. 1945년 8월 국토가 분단되면서 강원도도 남북으로 갈라졌다. “뭐뭐 아니래요?”라고 들리는 강원도 사투리가 북한 사투리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보듯이 한동네 사람들이 남북으로 갈리었고, 남이나 북이나 강원도 사투리는 정겹고 순박하다.

 우리나라의 강원도는 크게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왼쪽을 영서(嶺西)지방, 오른쪽을 영동(嶺東)지방이라 하여 강원도 자체에서도 정치적·경제적·기후적인 차이가 심한 편이다. 강릉은 대나무도 자라는 아열대기후이지만, 평창군이나 정선군은 한 여름에도 긴팔을 입어야 할 정도다.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어업과 농업을 할 수 있는 동해안에 비해, 이승복기념관 등 화전민으로 상징되는 산악지역인 영서지방은 경제적으로도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강원도 상징은 붉은 소나무

 

 최근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폭설이 내려 재난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동해에서 오는 비구름이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넘지 못하고 동해안에 눈을 몽땅 쏟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관령이나 고지대에 해당하는 정선 등에는 항상 눈이 많이 온다. 지금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러시아의 소치는 날이 따뜻해 눈이 녹아서 걱정이라는데 강원도의 평창은 그럴 일이 없다. 평창은 동계올림픽을 포함해서 러시아의 소치보다 훨씬 훌륭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다.

 강원도 평창은 한국인이라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통해 제일 먼저 만나봤을 것이다. 1930년대 쓰인 이 소설에서 허생원은 ‘봉평장’ ‘대화장’ ‘진부장’이라는 평창군내 장터를 말한다. 이효석 때문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흐드러지는 메밀꽃을 알았다면, 월정사는 오대산과 평창을 알리는 또 다른 명소이다. 오대산을 가려면 평창군을 가야하고 오대산에 가면 진부에 있는 월정사를 가야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4년 후면 스키에 관심 없는 일반인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알펜시아를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게 된다.

 그동안 평창군은 강원도에서는 정치·경제적으로 별로 주목받는 지역은 아니었지만, 관광으로는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고, 이제 세계적인 명소로 주목받을 것이다. 일단 평창은 북쪽으로 홍천군, 서쪽으로는 횡성군, 남쪽으로는 정선군, 동쪽으로는 동해시에 접해 있어 강원도 관광의 요지이다. 서울에서 가건 호남선을 타고 가건 강원도를 가려면 영동고속도로를 타야하는데 영동고속도로를 가면 원주를 지나 만나게 되는 강원도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릴 때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금강산을 갔다가 설악산·오대산으로 내려오는 관광루트가 생긴다면 말 그대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강원도를 상징하는 나무는 뭐니 뭐니 해도 키 크고 붉은 소나무이다. 한 겨울에 눈을 이고 서 있는 모습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산림학자가 강원도 산악지형과 동해안에서 자라는 나무를 금강형이라고 명명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주로 조정에서 사용할 목재로 쓰였고, 최근에 남대문 복원공사에 가짜 금강송을 썼다고 해서 뉴스에도 나오는 귀하신 몸이다.

 

 장르는 서양화, 정신·방식은 한국화

 

 눈 내리는 날 금강송을 그리는 작가로는 경주를 고향으로 둔 차규선이 으뜸이다. 차규선은 소나무·매화 등 주로 한국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한국인의 정서를 품격 있게 그리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림의 장르만 서양화일 뿐, 정신이나 소재나 제작방식 모두 한국의 문인화에 가깝다. 회사후소(繪事後素), 해의반박(解義般★), 경영위치(經營位置),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상징되는 동양의 예술이론은 그의 몸속에 스스로 체화된 것들이다. 그의 고향 경주는 여수출신 사진작가 배병우가 찍은 소나무 군락지로 유명하거니와, 키 큰 소나무를 그리는 그의 감성도 그의 고향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눈 내리는 날 소나무를 그린 ‘풍경’ 시리즈이다. 인간의 자취라곤 보이지 않는, 바람 소리밖에 없는 소나무 군락지의 풍경이다. 예전 문인화의 정신을 이어받은 현대적인 산수화이다. 수많은 소나무들이 저마다의 눈을 맞고 서있다. 세상은 온통 하얀 눈 천지이고 소나무들은 눈 속에 서 있는데 그 중 키 큰 소나무 하나가 우뚝 서있다. 작은 무리 중에서 키 크고 잘 생긴 소나무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외로이 비켜선 모습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의연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세찬 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은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원도의 눈을 이고 있는 소나무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겨울이면 아무 때나 보러가도 좋을 것이다.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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