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남성 중심에 갇혀 한계”

 호나이의 인생은 여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가정과 사회의 편견, 억압과의 저항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선장이자 엄격한 복음주의 신자였던 아버지의 엄하고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선장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성으로 아내와 자녀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을 참지 못하였으며, ‘성경 던지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자주 화를 내곤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그렇듯이 총명한 호나이가 김나지움과 대학 등의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반대했다. 그 시대에는 여자들의 주요한 역할을 출산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결혼과 함께 여자에 속한 재산은 남편에게 속하기 때문에 딸에게 투자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찬 소녀로 학교에 입학한 후로 줄곧 교사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녀는 가족과 연인과 힘들어질 때마다 학문의 세계에서 힘을 얻곤 했다. 그녀는 애정에 대한 욕구가 강한 여성이었고, 여러 차례 연인과 헤어짐이 있었지만 그러한 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녀는 의과대학 시절에 만난 남편과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를 출산하지만 결혼생활에서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고 이혼하게 된다.

 

 “인간행동의 근원은 성(性)이 아니다”

 

 그녀는 정신분석 훈련을 받으면서 프로이트를 존경하게 되지만, 여성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남성 중심의 프로이트 이론은 수정될 부분이 많은 것으로 인식했다. 그녀는 자신의 관점이 프로이트에 대해 비판과 반대라기보다 프로이트 이론의 발전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협회는 그녀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의 정신분석발전에 기여했던 그녀는 자신이 키웠던 조직과 동료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끊임없는 배척의 경험 속에서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그녀가 버티고 성장을 위해서 노력했던 이유는 인간정신에 대한 이해에 오류와 경계를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에게 인간 행동의 근원은 성이었다. 그에게 인간은 쾌감·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였고, 자신의 그러한 추동을 인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 채 그러한 욕구에 끌려 다니는 존재였다. 그에게는 인간이 보이는 고귀한 품성을 단지 위선일 뿐이며,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의식적 세계에 놓여있는 성적 욕구를 인식하고 잘 다스리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호나이는 프로이트의 이러한 주장에 반대한다. 그녀는 프로이트가 성을 인간 본성의 근원으로 보았던 것은 19세기 북유럽이 성에 대해 강하게 억압하던 문화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시대와 지역의 문화에 근거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빅토리아 왕조처럼 남녀 관계가 제한되고 성적인 금기가 엄격한 시대에는 본능 충동은 현실적으로 위험시되었기 때문에 불안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가령 미혼여성은 성관계로 인해 자기가 고통이나 수모를 받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자위행위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인을 파괴시키는 실제적인 위험으로 간주돼 금지됐다. (‘현대인의 이상성격’ 중)

 그녀는 인간본성에서 더욱 근본적인 것은 적개심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성욕보다는 적개심을 더 자주 경험하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동체에서는 적개심을 억압하고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인간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적개심을 적절히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이끌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성충동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불안의 빈도는 성충동을 개인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얼마나 금기시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적개심은 어느 시대에나 금기시되고 있는 요인이므로 불안을 야기시키는 특수한 자원이 된다. (p77)

 

 적개심, 불안을 야기시키는 특수한 자원

 

 적개심은 다른 대상에 대한 친밀함과 관계형성과 양립할 수 없다. 모든 대상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호감과 분노를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적개심을 인식하고 극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발전된 관계를 형성할 수 없으며, 억압으로 인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용암과 같은 응축된 적개심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적개심을 억압하면 그것이 의식에서 자각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개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성격으로부터 분리되어 통제권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통제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것은 내부의 어느 구석에 고도로 폭발되기 쉬운 형태로 남아돌면서 기회를 노린다. 억압된 적개심의 폭발력은 위력적이다.

 최근 사회는 이념과 지역·계층과 연령 등에 따라 우리 안에 가득 찬 적개심들이 분출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적개심을 지니고 참아내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해준다. 상대방과 멀어지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으면서 타인과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그녀는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이제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적개심과 사회적 문제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적개심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자신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살펴볼 때이다.

정의석 <무등지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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