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지킨 바다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빠뜨려
▶풀싹이 돋으면 봄인 줄 아는데 그때는 이미 봄이 돋은 한참 뒤다. 꽃이 피면 봄이 온 줄 아는데 그때는 이미 봄이 활짝 핀 뒤다. 메가 연둣빛으로 덮이면 봄 타령들을 읊는데 그때는 이미 봄이 간 뒤다. 농사꾼들이 땅땅거리고 흙이 부슬거릴 때 봄은 돋고, 밭둑을 거닐 때 봄은 오고, 논밭을 갈 때 봄은 한창이다. 어쩌면 농사꾼들이 찬바람 막으며 무슨 씨앗을 뿌릴 지 도란거릴 때 봄은 스며들고 있었을 게다.
▶앞서 떠올리고(계획), 미리 마련하여(준비), 해나가고(실천), 그러다가 잘못 되면 고치고(수정), 그렇게 먹고 사는 거다. 나 하나 먹고 사는 것만 그러는 거 아니다. 함께 사는 마을일도 그렇고, 더불어 사는 나라일도 그렇다. 닥쳐서야 후다닥 하고, 터지고서야 얼렁뚱땅 막는다면 뒤죽박죽이 되고 `웃기는 짬뽕’이 된다. 푸석푸석한 삽자루 들고 땅을 팔 수도 없고, 씨 뿌린 뒤 밭을 가는 것이 아니다.
▶부지런히 자기 몫만 챙기는 국회의원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지지선언’을 하여 `나를 따르라’고 부추긴다. 마치 예수님처럼. 표를 구걸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구걸(求乞)’은 거저 달라고 빈다는 뜻인데, 거저 달라고 빌 때와 아주 달리 떵떵거렸다는 말이다. 거기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사람들은 지지선언에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한다.
▶똑똑한 체 자기 자리만 지키려는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듯 `황제노역’을 질러서 `자비를 베푼다’고 우쭐거렸다. 마치 부처님처럼. 신호등 어길 때처럼 거리낌 없다. `거리낌’은 마음에 걸려 꺼림칙하다는 뜻인데, `거리낌 없다’는 그것조차도 없다는 말이다. 그때 광주광역시장을 비롯 떠세하던 사람들, 그러니까 토호세력들은 `황제’를 너그럽게 봐달라고 빌었다. `떠세하다’는 젠체하고 억지 쓰다는 뜻이다.
▶이순신은 우리나라를 쳐들어온 왜놈들을 남해 바다에 처박았다. 이순신이 지킨 바다에 어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빠뜨렸다. 그래 놓고 헤엄도 못 치는 대통령이나 큰소리나 치는 국회의원들이 가서 낯 세우고 수선만 피운다. 그 돈이나 시간 있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질 수 있는 사람들과 발을 동동거리며 울부짖는 식구들을 보내야 한다.
▶문제는 누구하고 가깝냐, 내 잇속에 맞냐가 아니라 본질이다. 그런 일들이 `왜 생겼을까?’를 혼자라도 중얼거려보고, 그들이 `왜 그랬을까?’를 함께 더듬어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먼저인지를 꼭 챙겨야 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슬쩍 넘어가고, 그저 팔짱 끼고 구경하다 떡이나 얻어먹으려는 마음가짐 버려야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빙글빙글 돌리고만 있다가, 언젠가 멈추겠거니 하며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어미닭 뒤를 따라 쫑쫑거리는 병아리 떼처럼 따라만 갈 것인가!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는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올라서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고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서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젊은 양희은은 기타 하나 들고 가냘프게 노래했다. 나만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 아니고, 언저리가 썩어 들어가면 나까지도 썩어 들어간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우리가 봄 제대로 맞이하려면 무엇이 먼저인지 도란거린 뒤 농사꾼처럼 땅땅거리고 나서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이 되어 떠돈다. 그 말에 우리는 빨려들고 있다. 우리가 알아차려야 한다. 참, 힘없는 사람들에겐 서로 베풀라며 가르치면서 왜 힘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진 않는 걸까?
글·그림=김요수
김요수님은 월간 샘터에 2년 동안 연재했으며 <딱좋아 딱좋아>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