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텃밭? 식민지?

 ▶노란 옷을 입은 꼬맹이들이 건널목에 섰다.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뀐다. 아이들은 꼬물꼬물한 손을 들어 흔들며 건넌다. ‘녹색불’이란 대목에서 ‘어, 파란불 아니야?’하고 느꼈다면,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다녔든지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파란불’이라고 했으니까. 조금이라도 젊게 사시려면 이제부터 녹색불이라고 부르시라.

 

 ▶맨 처음 ‘파란신호등’이라고 교과서에 쓴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이 신호등 뒤에 섰을 때, 갑자기 뒤가 마려워 얼굴빛은 희놀놀해지고 눈빛은 파르스름해져서 그냥 파란불이라고 적어버렸을까? 교과서를 쓸 정도면 배울 만큼 배웠고, 잘난 사람이었을 테니 보통 사람들은 의심 없이 그대로 쭉 그렇게 써버렸을까? 아니면 그 사람이 녹색 색맹이었을까? 설마 그때는 푸르뎅뎅하고 푸르스름한 모든 것을 파랑이라고 부르지는 않았겠지? 어쩌면 처음엔 파란신호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누군가 녹색을 파란빛으로 우겨서 말한 사람이 있었기에 신호등은 녹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 불렸겠다. 발가벗은 임금님처럼 녹색신호등은 부끄러움 없이 파란신호등이 되어 흘러 전해졌다. 처음에 누군가 말했을 테고, 그것이 버릇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붙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옳은 것으로 인정해버렸겠다. 그것을 관습(慣習)이라 하고, 관습으로 굳은 것을 관례(慣例)라 한다.

 

 ▶버릇? 오랫동안 자주 되풀이하여 몸에 익어 버린 몸짓이나 말을 일컫는다. 잘못된 버릇이 든 사람에게 ‘버르장머리 없다’고 하고, 전라도에서는 ‘보초대가리 없다’고 말한다. ‘버릇’에는 주로 ‘없다’는 말이 붙어, ‘버릇없는 짓’이라 하면 허튼 짓, 바보 같은 짓, 쓸모없는 짓처럼 줄곧 나쁘게 쓰이다 보니 나쁜 말이 아닌데도 나쁜 뜻으로 받아들여 잘 쓰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관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1592년 임진왜란은 우리가 물리쳤으니 우리 것을 지킬 수 있었지만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그리고 1945년 나라를 되찾았을 때와 1950년 한국전쟁 때 관례는 싹 바뀌지 않았을까? 으레 식민지시대라 부르는 일본강점기 때부터 생긴 관례는 무엇일까?

 

 ▶일본놈들은 우리나라를 다스리려고 비비고 굽실거리는 놈들을 좋아했겠다. 손가락에서 피를 뽑아 ‘충성’을 맹세한 다카키 마사오는 얼마나 더 예뻐했을까? 부자라고 스스로 돈을 갖다 바치고, 배웠다고 시(詩)와 노래로 알랑방귀 뀐 놈들은 또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 백성들은 목숨을 이어가려고 이리저리 눈치보고 숨죽이며 살았겠다. 입술에서 피가 날 때까지 이를 앙당 물고 버텼겠다.

 

 ▶일본놈들은 총과 칼 앞에 줄을 세워야 편했겠고, 나라를 팔아먹던지 말아먹던지 제 몸과 식구들만 편하면 좋은 놈들은 총과 칼 앞에 반듯하게 줄을 서서, 간을 내놔라 하면 간을 내놓고 쓸개를 내놔라 하면 쓸개를 내놓았겠다. 일본놈들의 서슬 아래서 그보다 더한 앞잡이들의 서슬 아래서, 백성들은 입을 닫고 견뎠겠고 먼 곳만 물끄러미 보았겠다.

 

 ▶호남을 새정치민주연합, 그러니까 옛 민주당의 ‘텃밭’이라고들 한다. 그것이 어느덧 관례가 되어버렸다. 텃밭은 자기가 심고 싶은 것을 맘대로 심는다. 그것이 곡식이든 꽃이든. 뭐 밭을 놀려도(무공천)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남의 동네 막대기를 꼽아도 누가 뭐라 할 구석도 없다. 자기가 골라서 심고, 가꾸는 규칙도 자기 마음대로다. 그들에게는 텃밭이지만 호남 사람들은 개구리나라다. 통나무를 던지면 감사, 황새를 보내도 황공.

 

 ▶7·30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호남은 옛 민주당의 ‘텃밭’이 아니라 ‘식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성’이란 말이 ‘시민’이란 말로 바뀌었을 뿐, 그저 눈치보고 숨죽이며 퍼런 서슬 아래서 입 닫고 먼 산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제는 관례를 벗어던지고 버르장머리 좋고 보초대가리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그림=김요수



김요수님은 월간 샘터에 2년 동안 연재했으며 <딱좋아 딱좋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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