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 대마왕’에게 `의’로 대적하라

 ▶연산군은 창기 가운데 고운 계집을 뽑아 바치는 채홍사라는 벼슬과 커서 미인이 될 것 같은 어린 계집을 뽑아 바치는 채청사라는 벼슬아치를 두었다. 이런 벼슬을 둔 까닭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고, 연산군은 `지금’과 `나중’을 나누는 꼼꼼함까지 보였다. 배우고 익혀서 입 바른 소리께나 한다는 선비들은 없앴다(무오사화). 까불거나 대들면 죽였다는 말이다. 임금께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하는 곳인 사간원도 없앴다. `불통 대마왕’이 되셨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지금의 청와대가 왜 쓱 스치는지 모르겠다.

 

 ▶왕이 이러니 그 아랫것들은 오죽 했겠는가. 이때 `오직, 백성!’, 왕이 두려워할 것은 `오직 백성’이라면서 홍길동이 나타났다. `오직 예수’가 아니니 착오 없으시길. 잘 모르시겠지만 길동은 불합리한 신분차별도 말했다. 길동이 `작은 각시’에게 태어났으니까. 고갱이(핵심)는 백성들에게 끔찍하고 빼앗고 모질게 거둬들인 탐관오리와 토호세력의 곳간을 털어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일이다. 길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서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내도 되게 한 것이 아니다.

 

 ▶해서 사람들은 홍길동을 `의적(義賊)’이라 부른다. `의롭다’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곧 정의를 몸소 실천했다는 말이다. 전두환이 갖다 붙인 `억지 정의’와는 아주 다르니 착각하지 마시길. 연산군과 그 아랫것들이 백성들의 피를 마시고 살을 뜯을 때 길동은 힘없는 백성들을 도왔다. 정의보다는 잇속을 따지는 관료, 도덕보다는 속셈을 따지는 국회의원들의 따따부따하는 입들이 푸른 하늘을 촘촘하게 가린다.

 

 ▶명종은 인종의 배 다른 동생인데 왕의 자리를 잇는다. 큰아들에게 왕을 물려주는 시대였으니까 고개가 갸우뚱 하시겠다. 명종은 22년 동안 왕의 자리에 있었으나 실제 왕 노릇은 어미인 문정왕후가 했다(수렴청정). 문정왕후가 묻힌 곳이 태릉인데 지금 국가대표 선수촌이 있다. 형의 갑작스런 죽음과 꺼림칙한 왕위 계승으로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얼토당토않은 일을 꾸며 인종의 사람들을 몰아내어 자기 사람을 심고(을사사화), 헛소문을 퍼뜨려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은 죽였다(이를 박시백은 `양재역벽서핑계사건’이라 불렀다). 국정원 댓글 사건도 떠오르고, 이명박 시대의 유인촌도 떠오른다.

 

 ▶인종파인 대윤과 명종파인 소윤이 눈이 시뻘개져 권력다툼을 했다. 인종이나 명종은 모두 아내의 성이 윤이라서 그렇게 불렀다. 권력에 눈이 뒤집어지면 관리들은 썩어 문드러지고, 백성들의 삶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엎친 데 덮친다고 흉년까지 찾아왔다. 벼슬들은 권력 때문에 목숨을 걸고, 백성들은 벼슬 때문에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 오죽하면 소나 돼지를 잡는다고 깔보이던 백정인 임꺽정이 나서서 탐관오리를 몰아냈을까? 그 또한 길동처럼 벼슬아치와 관아에 쌓여있던 곡식을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은 임꺽정도 의적이라 불렀다.

 

 ▶옳을 의(義)는 아무 곳에나 붙이지 않는다. 바른 사람에게만 붙인다. 우리나라를 짓밟은 왜노무스키의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인 안중근 뒤에 우리는 의사(義士)란 말을 붙인다. `의사’에는 `비록’이란 말이 숨어있다. `비록 선비지만 의로운 실천을 했다’는 뜻이다. 물론 안중근은 `장군’이라 불러야 옳다. 또 옳은 일을 했으나 이름도 남기지 않은 사람을 의인(義人)이라고 부르기를 우리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의리(義理) 또한 아무 곳에나 붙일 수 없다. 나쁜 짓을 일삼는 깡패에게 의리를 붙일 수 없고, 제 잇속만 노리고 남보다 먼저 약삭빠르게 달라붙는 감바리에게 의리를 붙일 수 없다. 의리는 깡패 같은 권력에게 알랑거리는 것과 다르고, 잇속에 따라 권력을 휘두르는 일 따위와 다르다. 세월호 참사는 왜노무스키에게 배를 사는 순간부터 단원고 아이들이 걸어서 국회까지 갈 때까지 깡패와 감바리들만 득시글거린다. 이제 옳을 의(義)자를 붙인 의인들이 나선다. 의(義)를 응원한다.

글·그림=김요수



김요수님은 월간 샘터에 2년 동안 연재했으며 <딱좋아 딱좋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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