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을 생각하는 젊은 벗들에게

▲ Pawel Kuczynski 작.

 눅눅한 장마가 연일 계속되네요. 예전 같으면 이런 장마철에는 집안에 눌러앉아 이런저런 상념들에 잠겨 있겠지만, 이즈음의 장마는 생활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하나의 기상현상일 뿐.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적한 느낌을 주는 시골이지만 요즘은 이곳 사람들도 너무 바쁘게들 지내는 것 같아요. 세월호, 가자지구, 선거, 사건사고들도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저의 일상들도 분주하기 그지없어요.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런 절망적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저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어쩌면 저는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어쩌면 침묵이 더 큰 미덕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제도 보다는 비제도, 우리 보다는 나에 대해 더 깊이 천착해 지냅니다.

 

 문화귀촌, 생산자-소비자 연결 그쳐

 

 서울에서 일군의 미술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귀촌을 생각하는 모임’이 꾸려져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 들었어요. 해남과 장흥에도 들렀다가 귀촌해서 지내는 사람들과 만나고 가고, 강원도에도, 경상도에도 가볼 거라더군요. 아무렴 이제 귀농이라는 말보다 귀촌이라는 말이 더 신선하게 들리더군요.

 전형적인 농어촌지역인 강진에서도 농업인구가 15%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사회의 바람직한 생각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추구해온 귀농이라는 명제는 이제 어쩌면 귀촌이라는 범주로 더 넓어지는 게 타당한 것 같아요.

 인구의 절반이 서울과 주변의 수도권에서 살고, 또 그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라. 그래서 강진의 인구 28%가 65세 이상 드신 노인들이니, 이제 이대로 한 20년 쯤 뒤에 이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지금도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이곳 시골은 텅텅 빈 공한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편 서울시의 청년일자리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시골과의 연계에는 많이 취약한 듯해서 많이 안타까워요.

 지금의 청년들이야 서울에서 태어나 미디어에 파묻힌 서울에서 자랐으니 저 넓은 대지의 상상력 같은 건 바라기 민망하겠죠. 그런 벗들이 문화와 예술 활동들 근간으로 한 귀촌을 생각한다니 저으기 반가워요. 페이스북을 통해 한때 모래섬이었던 노들섬에 들어가서 자연에 의지해 숙식을 해결하는 ‘노들주민’이라는 이들의 활동내용도 보고 있어요. 그이들의 지향이 더 넓고 풍요롭게 펼쳐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서골에 귀농을 한 사람들이 많고, 저 역시 귀촌한 경우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더군요. 정책 중심의 통계나 미디어에 드러나지 않지만 귀농한 사람들 중 거의 절반은 여러 사정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있답니다. 저는 님들의 귀촌은 이런 실수를 따라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나라에서 공공미술이 처음 사람들 사이에 얘기되는 시기에 한 작가(박찬경)가 ‘풍덩미술’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어요. 창작자 개인의 생각보다는 그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무늬만 공공미술을 힐난하는 말이었죠.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네요.

 오래 전부터 문화귀촌이라는 말을 쓰고 실천에 옮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시도하기도 했었고, 그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주로 농촌의 생산물과 도시의 소비자들을 잇는 생활협동조합의 측면에서는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본연의 문화적 성과는 별무성과인 것 같아요.

 

 가난하고 서러운 눈물 닦아주는 예술

 

 이런 현상들이 있어요. 어차피 세상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이게 마련이지만, 귀농한 사람들은 그들끼리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생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끼리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생협을 하는 이들 역시 그들끼리의 만남에 너무 치우쳐 지내는 듯 하고, 대안학교도 전보정당을 하는 사람들도, 현지 토착민들도 모두 끼리끼리의 만남에 빠져 지내는 것 같아요.

 대저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시골은 자연. 땅과 하늘의 섭리는 이런 관념적인 방식의 차이나 구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예술이 인류사의 진보에 크게 기여한 바가 있다면, 제도와 반대편에 있지만 여전히 제도 하위 차원의 관행에 젖어있거나,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바람직한 사람 사는 어떤 것을 드러내는 것일 거예요.

 저는 늘 예술이 하방(下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젊은 벗들이나마 20세기의 현대미술, 우리미술의 지난한 질곡으로부터 벗어나야 해요. 귀촌을 생각하는 벗들이 그런 흐름의 작은 물꼬가 될 거예요. 부디 작업실에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애매하고 공감 없는 ‘우리’, ‘사회’를 반복적으로 주장하지 말기 바래요.

 하여 가난하고 서러운 흐르는 가슴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그런 예술의 세계를 펼쳐줘요. 자주 떠올리곤 하는 시 하나 붙일께요.

 <너도 견디고 있구나 //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황지우, ‘겨울 산’

윤정현 <시인>



윤정현은 강진 출신으로 80년부터 30년간 광주에서 살다가 귀향해, 3년째 강진아트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시인이며, 광주비엔날레에서 일했고, 지금은 `잘 살기’를 꿈꾸는 미학에세이를 쓰며 여러 가지 방식의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명발당’은 필자가 기거하고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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