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예절 보여줄 어른 사라져

 ▶안주와 함슨배는 왼손잡이다. 밥집에 가면 왼손이 바깥쪽으로 가는 대각선 끝에 앉는다. 숟가락질 젓가락질이 거치적거리니까. 미리 그렇게 앉자고 손가락 걸지 않았고, 나 여기 앉을 테니 그대 저기 앉으시게나, 말하지도 않는다. 하는 냥을 살피면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어렵게는 소통(疏通)이라고 말하지만, 쉽게 말해 척 보면 안다는 말이다. 좀 배운 티내려는 사람들은 `스눕(snoop)’이라고 한다.

 

 ▶스눕은 물건 하나 몸가짐 하나만 보고도 안다는 뜻인데, 아주 자잘한 것으로도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을 말한다. 굳이 우리말로 하면 `점쟁이’나 `귀신’쯤 되겠다. 점쟁이나 귀신처럼 척 보고 알지는 못해도, 팔꿈치를 툭 쳐서 눈치 채도록 일러주는 것을 `넛지(nudge)’라고 한다. 올바르고 똑똑하게 일하도록 이끄는 힘이다. 어디에 쏙 빠져들면 잘못 가기도 하는데 그때 옆에서 살짝 신호를 주는 것이다.

 

 ▶안주나 함슨배처럼 `척’하면 `딱’하고 알아먹는 귀신들만 산다면, 할 일이 없으려나? 그래도 가납사니보다는 낫겠다. 가납사니는 쓸데없는 말을 재잘거리는 사람을 이른다. 찰떡 이야기하는데 개떡 같은 소리나 지껄이고, 소 이야기하는데 개 같은 이야기로 끼어드는 사람, 옛날에는 가끔 있었는데 요즘은 언론에 떳떳하게 자주 나타난다. 스눕(귀신)은 아니더라도 넛지(눈치)라도 줘야 할 기자마저 엉뚱한 소리 뚱뚱 나불대며 가납사니 노릇하는 일 잦다.

 

 ▶거기에다 쟁퉁이들마저 언론에 두꺼운 낯을 내밀고 장관이나 총리를 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떤다. 쟁퉁이는 잘난 체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을 말하기도 하고, 생각이든 돈이든 쪼들려서 속 좁고 비꼬인 사람을 말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되면서 쟁퉁이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쟁퉁이들이 뭐 대단한 짓이라도 했다고 언론은 얼씨구나 떠들어댄다. 하기야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거리가 아니어도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거리라고 배웠을 테니까. 겉은 사람인데 개 같으니까 기사거리는 되겠다.

 

 ▶안주나 함슨배는 어떻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게 되었을까? 아마 어렸을 때 밥상에서 오른손을 쓰라고 억지로 배우지 않았겠고, 왼손을 쓴다고 야단을 듣지 않았을 게다. 왼손을 쓰면 복(福) 달아난다는 말도 듣지 않았을 게고, 호랑이가 물어갈 놈이라는 못된 설움도 받지 않았을 게다. 나쁜 어른 만났으면 왼손 쓴다고 밥 먹다 쫓겨나는 일 잦았고, 회초리 때문에 종아리에 멍께나 들었을 텐데.

 

 ▶어른들은 왼손 쓰는 것이 귀여웠던지 야무졌던지 지켜보았을 테고 어쩌면 북돋아주었는지도 모른다. 안주나 함슨배가 좀 귀엽고 야무지기는 하다. 왼손잡이가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이 아님을 알게 해 주어 스스럼없이 왼손을 쓸 수 있었을 게다. 어른이라고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지 않았을 테고, 경험을 내세워 윽박지르지도 않았을 게다. 어떻게 아느냐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것 아닌가, 스눕(귀신).

 

 ▶안주나 함슨배의 어른들은 힘으로 짓누르거나 우김질하지 않고, 마음을 나누고 몸으로 보여주었을 것이다. 어른들이 마음으로 나누어주고 몸으로 보여주는 일을 우리는 `예절(禮節)’이나 `도덕(道德)’이라 부른다. 교과서에서는 인사하고 질서 지키는 것을 예절이라고 가르치고, 동서양 철학자의 이름과 그들이 한 말을 외우라면서 도덕이라 가르친다. 예절이나 도덕은 책으로 가르치고 책에서 배우는 일이 아니다. 어른들의 마음에서 느끼고 어른들의 몸에서 배운다. 말이 없어도 어른들에게 배우는 게 예절이고, 글이 없어도 어른들을 보고 익히는 게 도덕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그리고 드러나는 대한민국의 시궁창!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그리고 밝혀지는 높은 벼슬아치들의 지린내! 시궁창이 자랑스러울 수 없고 지린내가 향기로울 수 없다. 뭐 시궁창을 자랑스럽게 지린내를 향기롭게 보듬는 가납사니와 쟁퉁이들이 있다. 그런 놈들 뜻밖에도 높은 자리에 많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상전과 하인’의 문제다. 도덕과 예절을 보여줄 어른이 사라져서 도덕과 예절마저 사라졌다. 깨알만큼 남은 도덕과 예절을 살려야 한다.

글·삽화=김요수



김요수님은 월간 샘터에 2년 동안 연재했으며 <딱좋아 딱좋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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