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영민 작, 관계의 감각.

 요즘처럼 발달한 정보통신의 시대에, 그것과 실낱같은 연줄이라도 걸치고 있다면 이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의 자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한 개인은 누구든 개별자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일반적 반영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훨씬 이전 시대 같으면 ‘백이숙제(伯夷叔齊)’ 같은 삶도 더러 가능했지만, 이즈음 그런 삶의 모토를 떠올리며 살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

 도시에서 먼 시골에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이고, 외출도 자제하고, 말수도 줄이면서 되도록 단순 명료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는 이 소박한 희망은 지극히 관념적이고 어쩌면 시대에도 어울리지 않는 생활태도일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든다.

 

 민족 공통의 언어체계라는 자부심…

 

 우리는 말을 통해 교육받아 왔고, 생활하고 있다. 4·19 한참 뒤에 태어난 내게 그 말들은 그다지 올곧거나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느끼고 싶었고, 그것들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요 근래 내게 들려오는 말들은 흉흉하고 강팍하기 그지없어서 나는 내내 이 말들의 숲에서 길을 헤매고 도무지 그 무언가의 방향이나 형태를 가져야 할 나의 말투나 어법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가늠할 수 없이 지낸다.

 나의 경험은 여느 사람들과 달리 아주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는데, 예전 광주비엔날레 일을 할 때 빈번하게 접할 수 있었던 외국 작가들이 나와 우리들을 보고 하던 말들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작가들은 일상적인 것들 모두를 낯설게 보기를 좋아하는 편인데다가, 또 제3세계의 한 끝자락에 있는 동북아시아, 한국의 광주에서 본 그들의 현실은 도무지가 이해 불가능한 것들 투성이인 것만 같았다.

 불과 400킬로도 되지 않는 수도 서울과 지방도시 광주의 간극이 그렇고, 접근방식이 어찌 됐든 그들이 흠모해 마지않던 5·18이 일어났던 도시의 간판이나 건물, 도로 같은 시각적인 것들에 더욱 그랬다. 하여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우린 미친 사람들이야. 저들은 분명 우릴 그렇게 볼 거’라고.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한국전쟁 시기 서울 거리에서 꿀꿀이죽을 먹던 사람들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세계경제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진입했겠는가? 비록 UN이 집계한 객관적 삶의 질은 후진국 수준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드물게 한글이라는 민족의 공통된 언어체계를 갖고 있다. 이 자부심은 은연중 우리 스스로를 선민적 민족의식으로까지 끌고 간다. 게다가 언어의 꽃이라는 시(詩)의 경우 우리는 전세계 최고의 시인 수와 시집의 출판, 소비를 자랑한다.

 이런 시의 세계와는 달리 혹자는 이즈음을 시각적인 것의 중요성을 들어‘비디오스페르쿠스의 시대’라고도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사람을 사람답게 진화하도록 하고, 문명의 역사를 가진 사회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했던 말들, 즉 언어의 체계는 누가 뭐라 해도 아직까지 그 주도적 위상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여겨왔었다.

 하지만 지난 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래, 이어지는 숨 가쁜 사건사고들과 그에 대한 우리사회에 휘날리는 말들의 풍경을 보며 우리는 지금 지구의 중심으로 뚫린 심연의 우물 속으로 끝없이, 정말로 끝이 없는 암흑의 나락으로 빨려 들어가고만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

 국가란 무엇이고 정치란 무엇인지. 종합편성채널 방송 비롯한 신문과 방송 등속의 미디어들을 차지하는 저 수많은 말들의 난무는 미친 년놈들의 넋두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봄날의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처럼 몽환 속의 환청이었으면이나 좋으련만, 몽롱한 뇌리를 쑤셔대는 날선 바늘의 느낌을 차라리 쾌감으로나 받아들였으면, 그래서 술에 취해 바다로 자맥질하는 육신이었으면 좋겠다.

 

 정보화 시대에 난무하는 ‘과잉 표현’

 

 80·90년대 이래 정보화가 심화되면서부터 우리사회는 물론 전 지구촌에 제기된 과잉 표현의 문제는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사회를 풍미하고 있다. 마치 자본의 유령이 유럽사회를 배회했던 것처럼, 안개처럼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그 무엇이 우리들을 감싸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요사스런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슬그머니 왔다가 꼬리를 감추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런 말들의 성찬에 이어서 연례행사처럼 최근 내가 일했었던 광주비엔날레에서도 말들이 쏟아지는데, 그것은 예술표현의 자유라는 것과 상치되는 입장의 현실적 이유라는 것이다. 홍성담을 대표한 작가들이 그려낸 오월에서 세월까지의 몽타쥬 연대기와 현직 대통령, 그리고 수정한 닭 그림. 어쨌든 이것은 예술적 범주의 언어라는 것이고, 현실적 권력 외엔 이유를 알 수 없는 ‘안 된다’는 것인데, 작가와 시민들은 지금 당장 작품을 걸라고 하고, 시에서는 예술과 현실이 어떻게 병존할 수 있는지 그 결론을 대토론회를 통해 내리자고 한다.

 노이즈마케팅이 생각난다. ‘이것은 무엇이다’고 분명하게 규정짓지 못하는 다양성과 불확실성의 시기, 이 안개와 같은 말들의 숲 속에서 우리가 갈 길은 만나는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다른 제각각의 해법으로 도출되기 십상일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대저 예술이 무엇이라고 딱 부러지게 규정지을 수 없는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자유라는 ‘제 논에 물 대기’식 우리들의 말을 어떻게 수렴할지, 도대체가 짐작할 수가 없다.

 말들의 풍경을 지켜보기 힘들다.

윤정현<시인>



윤정현은 강진 출신으로 80년부터 30년간 광주에서 살다가 귀향해, 3년째 강진아트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시인이며, 광주비엔날레에서 일했고, 지금은 `잘 살기’를 꿈꾸는 미학에세이를 쓰며 여러 가지 방식의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명발당’은 필자가 기거하고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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