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사람이 바가지까지 씌운다?

 ▶조선 후기, 왕은 허수아비처럼 있고 왕과 가까운 사람이나 신하가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이른바 기득권은 나라와 백성을 돌보지 않고, 집안의 부귀영화(富貴榮華)만 노렸다. 나라의 미래쯤은 눈 밖이고, 백성의 삶은 ‘낙동강 오리알’로 내쳤다. 세도정치(勢道政治)다. 나라의 틀은 흔들렸고, 벼슬아치들은 너도나도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며 탐관오리(貪官汚吏) 줄에 섰다. 조선 후기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리 낯설지 않다.

 

 ▶그때 조선은 외국과 교류가 늘어 백성의 살림이 나아졌고, 배울 짬도 늘어났다. 다른 나라 백성들을 보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았고, 배우고 나니 무엇을 바꿔야하는지 깨달았다. 평안도는 남달리 상업 활동이 힘차서 씩씩한 동네였지만, 평안도 서북 백성들은 고려 유민이라 불리며 차별대우가 심했고 업신여겨졌다. 요즘 말로 하면 ‘홍어’라 부르고 ‘빨갱이’로 몰았다.

 

 ▶1811년 지역차별과 사회모순을 바로잡겠다며 홍경래가 무기를 들었다. 바뀌는 사회의 바뀌지 않는 정치를 바꾸려고, 양반은 물론 농민, 노예까지 여러 계층의 백성들이 모여 나라에 대들었다. 홍경래의 난이다. 백성이 죽어간 난은 가라앉았으나 기득권과 정치는 바뀌지 않았고, 백성들은 고달픈 삶을 되풀이했다. 기득권은 자리 지키기에 더욱 힘썼고, 정치는 잇속에 더욱 빠져들었는데 이 또한 지금의 우리가 겪는 일과 비슷하다.

 

 ▶기득권은 까닭을 살피지 못했고, 정치는 본질을 보지 않았다. ‘자리’와 ‘잇속’에 눈이 멀어 까닭과 본질이 뭔지도 몰랐다가 더 맞는 말이겠다. 기득권은 오히려 그 까닭을 힘없는 백성에게 몰아붙였고, 정치는 그 본질을 백성에게 떠넘겼다. 기득권은 도리어 백성에게 어지러운 나라의 책임을 물었고, 정치는 백성에게 더 힘든 의무를 지었다. 덤터기다. 그때의 백성이나 지금의 국민은 기득권과 정치에게 덤터기만 쓴다.

 

 ▶그리고 기득권은 백성에게 “가만있으라” 했다. 요즘 말로 ‘이모빌리즘’, 나도 가만있고 너도 가만있으면 기득권은 그대로 누리고 백성은 그대로 고달프게 산다는, 그러니 ‘까불지 말고 그냥 이대로 살자’는 뜻쯤 되겠다. 누가 우스갯소리로 그런다. ‘이모빌리즘’은 어려운 고모가 아닌 정다운 이모 빌려줄 테니 가만있으라는 말이며, 가만있다가 덤터기 쓰라는 말이라고.

 

 ▶홍경래의 난에는 또 다른 지닐총(기억)이 있다. 홍경래의 난을 막지 못하고 무릎 꿇은 관군이 있었는데, 그 비겁한 관군을 호되게 비판하여 과거에 급제한 사람. 김삿갓이라 불리는 김병연이다. 무릎 꿇은 관군이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안 뒤 김병연은 벼슬을 버리고, 하늘 보기가 부끄러워 큰 삿갓을 쓰고 다녔다. 김삿갓과 달리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왜노므스키를 떠받들며 우리 백성을 죽을 만큼 괴롭혔고 죽였는데도 아주 뻔뻔하게 돈과 자리를 움켜쥔 연놈들, 이 땅에 아직도 많다.

 

 ▶김삿갓은 욕본 할아버지와 욕보인 자신 사이의 괴로움이 엄청났겠다. 할아버지의 비겁이라도 손가락질해서 돈과 자리를 움켜쥐자니 자신이 비겁해지고, 할아버지의 비겁을 감추자니 자신이 설 자리가 없었겠다. 그렇다고 손가락을 자를 수도 없고 고개를 들 수도 없어서 차라리 기득권과 정치를 비웃고 깔보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부끄러움을 삿갓으로 가린 채 떠돌았고, 우리에겐 ‘민중시인’으로 남았다. 염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그의 시늉(패러디)이 넘쳐난다.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염치 있는 사람은 가만있으라 하지 않고 알려주고 깨닫게 해준다. 염치 있는 사람은 덤터기 씌우지 않고 바가지 씌우지 않는다. 염치를 속되게 부르는 말이 얌통머리다. 얌통머리 없는 연놈들이 기득권을 움켜쥐고 국민들에게 “가만있으라” 외치며 탐관오리 줄에 서 있다. 책임과 의무를 나 몰라라 하며 국민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연놈들은 모두 물러나고 책임도 져야한다. 그가 학자이든 기자든 국가공무원이든 국회의원이든 그리고 대통령이든.

글·삽화=김요수



김요수님은 월간 샘터에 2년 동안 연재했으며 <딱좋아 딱좋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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