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광주의 상흔을 치료할 곳 어디랴

▲ 오월광주치유사진전 `기억의 회복’. <사진 제공=광주트라우마센터>

 5·18 민중항쟁 32년 만에 그 내외상을 치유하고자 2012년 광주에 트라우마 센터가 들어섰다.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센터의 설립을 반겼다. 5월의 후유증으로 스스로 상해하고 죽음까지 몰고 간 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 비단 국가권력의 광포에 희생된 이들이 5월에만 있었는가? 여순항쟁, 제주 4·3, 독재 권력에 의한 고문과 구금, 투옥 등이 가져왔던 상흔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터.

 유엔의 고문방지협약에 의하면 고문생존자 치료 및 재활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명시돼 있다. ‘당사국은 국내법체계 내에서 고문으로 인한 피해자가 구제를 받고 가능한 한 완전한 재활수단을 포함하여 공정하고 적절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실효적인 권리를 보장한다’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1995년 고문 방지협약에 가입함으로서 이를 적용하게 됐다. 조사에 의하면 5·18민중항쟁 부상자와 구속자, 유족의 55.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고 있다고 한다. 그런 지경에 늦게나마 들어선 트라우마 센터의 역할을 광주라는 지역적 상징성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구심으로서 광주가 갖는 역사성에 기반해 설립하고 운영되었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니 지역성도 역사성도 민주화운동의 공헌성도 아닌 채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 센터는 보건복지부에서 3년간의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되어 운영하고 있으며, 근자에는 이런 센터의 위탁운영주체를 공모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센터가 확실히 뿌리박고 국내 트라우마 관련 센터들의 중추역할을 해야 할 광주광역시에서 말이다. 센터에는 한해 평균 국비와 시비 합해서 8억 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며, 13개의 상담·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외상과 내상을 치유하고 있다.

 이는 결코 많지 않은 돈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복지부가 원하는 것은 5월에 국한된 치료는 아니나 보다. 정신보건과 자살예방 등에도 함께 온 신경을 집중하라고 채근한다.

 역사의 상흔이 깊게 패인 광주에서 이뤄지는 사업이 정부의 시범 지원사업이다 보니 이래저래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헌데 민선6기 광주광역시장께서는 취임사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평등한 인권도시 광주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노약자·장애인·어린이 등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국내와 아시아를 아우르는 아시아트라우마센터 허브로 육성하는 마스터플랜을 세우겠습니다. 소통과 신뢰, 공동체와 개인의 삶의 질이 측정되고 개발되는 광주만의 가치를 세우겠습니다”라고.

 2015년 예산에는 이런 시장의 약속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마스터플랜은커녕 한해 연장된 트라우마 센터의 운영을 위탁할 주체를 찾는다고 한다.

 서울에서 광주를 오가며 온 몸을 받쳐 트라우마 센터를 운영하는 센터장이나, 계약직으로 적정한 대우도 받지 못하면서 헌신하는 11명의 인력이 있음에도 말이다. 센터의 독립건물로의 이전은 언감생심 말조차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비록 국비의 지원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지방정부도 지역의 생생한 역사 앞에서 당당해져야 한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가장 우수한 경험을 축적한 트라우마센터가 이리 홀대 당하고 소외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겨레에 실린 한홍구 선생의 트라우마센터에 대한 컬럼을 보면서 광주에 있으면서 정작 광주안의 소중한 가치를 방관해온 내 자신도 후회스러웠지만 저 시청사 안에 있는 분들은 대저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궁금해진다. 시장이 일성으로 내세운 시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려는 몸짓이나 마음가짐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 광주를 떠나는 이들이 많고, 뒤돌아보며 고언을 하는 이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못내 서러운 날들이 가고 있다. 이번에 예산이 서지 않았으니 다음 추경에 반영해 보련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행정은 심지어 마스터플랜을 연구하자는 용역비마저 본예산에 넣지 않아 한 시의원이 더 안달을 했다는 소식은 행정편의의 발상일까 엘리트즘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트라우마센터의 앞날을 지켜볼 참이다. ‘소통과 신뢰의 행정’이 가장 광주적이면서 세상을 밝게 비추어줄 수 있는 트라우마센터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할 것인지도 말이다.

전고필



`전고필’ 님은 항상 `길 위에’ 있습니다. 평생 떠돌며 살고자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관광의 핵심은 `관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읽어내는 눈. 그것들을 찾아 평생 떠돌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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