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재 윤두서 서거 300주년 기념전시회 감상 후기

▲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 중 마고선녀, 작자미상.

 너무 게을렀다. 90여일 간의 전시인데 겨우 두 번을 찾았다. 쉽지 않은 판인데 알고도 가보지 못한 것은 직무유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200여 점에 달하는 고미술과 서책과 글이 있는 그곳에서 한참을 끙끙거렸다. 대저 저 예술혼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인지 발화지점이 궁금했다. 조선의 ‘삼원’·‘삼재’를 칭함에 있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의 삼원과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그리고 공재 윤두서를 일컫는데, 삼재에서는 공재를 배제하고, 긍재 김득신을 넣거나 관아재 조영석을 넣는 이들 또한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아직 파당의 힘이 건재한 현실의 증명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추려내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작품의 내용이나 실력보다는 출신과 내력이 중요하니까.

 그 여파가 바로 국립광주박물관이 기획한 이 전시가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인다. 의당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경을 썼어야 할 부분인데, 광주가 나서서 이 전시를 도맡아 하고 있으니.

 아니 광주에서 마쳤으면 중앙으로 초대되면 안되는가라는 아쉬움도 있다. 역시 그 안에는 중앙과 변방, 권력과 재야 이 간극이 너무 큰 것 아닌가 싶고, 서울과 남도 이렇게 봐야 하는지 싶어지기도 하다.

 하여튼 전시는 재미있었다. 공재의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말 그림이었다. 섬세하고 치밀하여 혀를 내두를 정도의 사실에 입각한 그림은 과연 사진과 같아 보였다.

 숨이 막힐 듯한 그림은 그의 자화상이었다. 한 시대를 관통했던 사내의 눈길 안에서 이글거리는 집념과 세상에 대한 다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가 백동경을 두고 털 오라기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렸다는 자화상은 정말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옥동 이서가 쓴 해남 녹우당의 당호가 올라왔고, 미인도 또한 올라왔다. 이런저런 볼거리 사이에서 재미난 그림과 이야기를 찾아냈다.

 첫 번째는 진단선생 타려도 그림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진단선생이 날이면 날마다 세워지는 국가를 보며 탄식을 했는데, 마침내 조광윤이 북송을 세운다고 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아 나귀에서 떨어지는데도 웃음 함빡 머금고 있는 그림이었다. 너무나 유명한 그림이지만 그래서 숙종임금이 그림 위에 화제시를 넣었을 정도였지만, 내내 그 그림 보면서 오늘 이 시대에 이런 그림 그려 드릴 만한 위인이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며 왔다.

 한편으로는 그 나귀에서 떨어진 진단선생의 모습이 공재 그 자신이었다는 설까지 따라 붙고 있으니 당연히 자화상의 인물과 그 인물이 깊게 들여다보이기도 했다. 정말 맞는 것 같았다. 아마추어의 눈에 보기에는.

 두 번째 눈길을 잡은 것은 마고선녀였다. 군선도 즉, 신선의 무리가 있는 그림 안에서 유독 젊은 여인으로 그려지는 마고선녀. 마고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임에도 망각하고 있었다. 마고산성이 있고, 지리산의 마고할미가 있고, 화순 도암면의 봉하리에 마고선녀 전설이 서려 있고, 도곡면의 고인돌 공원에는 마고할미가 천불천탑을 만들려고 치마에 가져가던 바위를 동자가 거짓으로 닭 홰치는 소리를 내서 한발 늦은 것이 서운해 발로 핑 차서 생긴 핑매바위도 있는데 그럼에도 잊고 있었다.

 도상 안의 마고는 18세의 젊은 신선으로 묘사되지만, 우리 땅의 마고는 큰 할머니로 이해된다. 즉, 대모신으로서 남성 중심의 신격사회가 형성되기 전에 우리는 모계중심의 사회 안에서 호흡했다. 생산을 관장하는 것이 여성이었고 그 여성의 생식능력에 의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사회였다. 할머니라고 부는 말에는 한(큰)+어머니의 의미가 내포되고, 마고는 그런 큰어머니로서 존재감이 있었던 것인데, 우리는 그 큰 어머니를 방치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의 설문대 할망, 변산의 개양할미도 모두 그런 거대한 어머니들이었고, 이 땅을 만들어낸 창조주였는데도 말이다.

 세 번째 눈길을 끈 것은 유해섬이라는 그림이었다. 하마선인이라고 불리는 유해섬의 그림은 신선의 그림 안에서도, 공재의 아들 윤덕희의 그림에서도 등장했다. 허름한 옷을 입은 총각으로 표상되는 그 곁에는 늘 세 발 달린 두꺼비가 있고, 유해섬의 손에는 짓궂은 두꺼비가 도망갈 때 다시 불러들이는 엽전 꾸러미가 있었다. 유해섬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데려다 준다는 그 두꺼비 한 마리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며 즐기는 전시는 이제 광주를 떠나갔다.

 10만 명이 넘은 관람객들이 찾았다는 이번 전시를 보며, 다시 한 번 국립광주박물관의 기획전이 고마울 따름이다.

전고필



`전고필’ 님은 항상 `길 위에’ 있습니다. 평생 떠돌며 살고자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관광의 핵심은 `관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읽어내는 눈. 그것들을 찾아 평생 떠돌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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