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가수도, 각설이도 우리 모두 한 자리에

▲ 천인천불 퍼포먼스 중 천개의 소망 날리기.

 올 겨울 화순군 도암면 번영회 어르신들의 전화를 받았다. “올해도 운주축제를 해야쓰겠는디.” 그 말씀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네”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몇 번의 회의를 가졌다. 축제는 19번째, 성년을 맞이하면서 무언가 터닝 포인트를 가져야 할 것이라 여기며 말씀을 나눴고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동의해 주셨다.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어려웠다. 가령 이런 것이다. “축제 무대가 각설이 무대보다 더 재미져야 하는데, 맨날 심심한 음악 나오면 동네 사람 누가 오겠어”라든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 한번 모셔다가 우리도 신나게 놀믄 좋겠어”다. 초파일과 맞물려 고요한 산사, 불탄일의 의미 등을 살려내고 싶지만 이런 요구 앞에서는 대책이 없다.

 문제는 돈이지만, 예산이야 늘 정해진 것이고 빠듯한 것이 현실인데도 말이다. 잘나가는 가수 한 명을 모시려면 몇천 만 원을 투자해야 하고,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데 라고 생각되다가도, 오죽했으면 가수 얼굴이라도 면전에서 보고 싶어 하실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해서 겨우 겨우 트로트 가수 중에서 좀 잘 나가는 분을 모시기로 했고, 한 시간의 무대를 운영하는데 비용도 1000만 원 정도를 투여키로 합의했다.

 진성이라는 안동역에서를 부르는 가수를 대상으로 했고, 그 일은 무대와 음향 등을 맡은 기획사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더불어 그렇게 원하던 각설이타령도 본 무대로 모시기로 했다.

 마침 목포대학교에서 지역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품바의 본향 무안 일로와 인접한 터고, 전국 여느 곳에서든 축제나 잔치 마당에 초대되는 품바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질적 수준을 고양하고자 개설한 품바학교가 있어 곧장 그분들을 섭외했다.

 또 한 측면으로는 지역의 전승문화를 어떻게 이 마당에서 펼쳐 보이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인가에 관한 부분이 고민됐다.

 도암지역은 옛 부터 목화와 콩 재배로 유명한 곳이고, 이는 모두 아녀자들의 헌신적인 노동에 기반한 것이었다. 즉, 노동요로서 전형적인 여성들의 삶의 애환이 밴 음악이 불렸고, 이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전승하고 있는 것이다.

 ‘도장리 밭 노래’라고 하는데, 이 또한 과거 40~50여 명이 함께 부르고 연행하던 것이 이제는 34명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젊은 세대가 비어 있는, 세대 간 단절과 초 고령화로 인한 현상은 비단 도암면만의 일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이는 또한 도암면민이 자체 개발한 ‘나무꾼 지게놀이’나 ‘도암 집짓기 놀이’ 같은 전형적인 남성 중심의 놀이도 무대에 올리지 못할 지경으로 이어졌다.

 주 무대의 공연을 과감히 지워버린 옛 경험도 있지만, 주최 측은 언제고 주 무대가 비워진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의 설득과정이 힘들다 보니 많은 비용이 무대 설치와 운영으로 집중된다.

 운주축제도 주 무대에 들어간 비용이 전체 축제 비용의 5분의2 정도는 돼 버렸다. 이런 부분이 일상적인 축제의 준비라면 이번 축제가 메인으로 내세울 수 있는 프로그램은 ‘천인천불 퍼포먼스’에 두었다. 천불천탑과 신비한 와불의 전설을 이 시대에 실현해 보는 방법을 취하며 현재 남아있는 불상이 97분이니 903명을 모셔서 사람의 천불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었다.

 축제 안에 또 하나의 축제를 넣었고 이는 별도의 준비단을 통해 가동하게 했다. 천개의 소망을 담아 천인이 모여 행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우선 종교적인 행사라고 거부하는 이들을 모집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 당일 뙤약볕 아래 두 시간을 운영해야 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었고, 소망을 담은 풍경을 만드는 체험자들이 행사 참여자도 많았지만, 개인의 소지를 위해 가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많았다.

  하여튼 어렵게 모집한 분들과 어울려 풍경도 만들고 소망을 담은 풍선을 날려 보내며 가족의 건강과 조국의 안녕을 기원하는 각자의 천불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성황리에 마감 되었다.

 그 사이 두 시간 동안 주 무대는 고요했고, 모든 운주사의 눈은 천인천불로 집중되었다.

  축제의 현장에서 나는 이런 시간을 늘 꿈꿔본다.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는 시간, 대동의 마당, 집단적 황홀, 성과 속을 벗어난 전혀 새로운 시간, 코뮤니타스라고 부르던 공간과 시간이 함께 탑재되어 동질성을 회복하는 마당이 그것이다. 도암면민이 갈구한 트롯가수와 각설이, 도암면민과 관람객 모두가 참여하는 운주정신이 부른 천개의 소망을 담은 천인천불 퍼포먼스, 그 사이에 축제가 가야 할 길을 또 되 곱씹어 보는 시간을 보냈다. 어렵다. 많이.

전고필



`전고필’ 님은 항상 `길 위에’ 있습니다. 평생 떠돌며 살고자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관광의 핵심은 `관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읽어내는 눈. 그것들을 찾아 평생 떠돌고자 합니다.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