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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 밑 休하기 ‘人+木’]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금사정 동백나무
사철 푸름에 뜻 결의한 `금강결사’
김세진
기사 게재일 : 2015-12-02 06:00:00
▲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금사정 동백나무.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옛말처럼 비가 잦은 초겨울입니다.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이 지나고 24절기 중 스물한 번째 절기이자 눈이 많이 내리는 대설(大雪)이 다가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생장을 위해 필요했던 잎들을 떨구고 추위를 준비해온 나무들이 자라는 겨울산의 정상부위를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나무들의 키가 다 고만고만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는 인간에게 물질적인 혜택도 주지만 그 나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무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의 자세를 일깨워 주기에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독립수로 천연기념물 지정 ‘유일’

 

 어린시절 향수가 깃든 시골마을을 대표하는 당산나무가 이미지숲이고 공공의 자산인 것처럼 당산나무가 자라는 마을숲은 우리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곳이고, 마을공동체의 의사소통과 공동행사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공동 터전의 기능을 하는 공간이지요.

 그래서 당산나무가 자라는 마을은 자기 동네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높고, 마을 주민들의 자아실현 수준 또한 높아서 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있기에 사소한 시비조차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거수인 당산나무는 언어(言語)입니다. 그 주변에는 나무가 살아온 삶의 무늬인 민속과 문화가 들어 있기에 신격화시켜 늘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전남도가 ‘숲속의 전남’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겨울 남도를 대표하는 나무는 단연코 동백나무숲입니다.

 빨간꽃에 흰눈을 살포시 덮고 있는 동백의 광경을 마주하면 그 느낌은 평생 마음 속에 각인됩니다.

 남도에 동백나무숲은 많지만 동백나무 독립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금사정(錦社亭) 동백나무(천연기념물 제515호·차나무과:Camellia japonica L·수고:6.0m·흉고:2.4m·수령:500년)가 유일합니다.

 붉디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금사정(錦社亭) 동백나무. 496년 전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삶 속 붉은 한이 올올이 맺혀있기에 나무에 대한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496년 전인 조선 중종 14년(1519년), 기묘사화의 참혹한 피바람이 세상을 휩쓸던 때 급진 개혁을 시행했던 정암 조광조가 유배지인 화순 능주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뒤, 그를 따르던 선비들에게도 죽음의 피바람이 불어 닥칩니다. 그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나주 출신 선비들인 임붕(林鵬)·나일손(逸孫)·정문손(鄭文孫) 등 11명은 현실 정치를 피해 고향으로 돌아와 금강 11인계를 조직하고 틈틈이 세상 이치를 살펴보면서 훗날을 기약했습니다.

 

 동백숲에 가면 8000년 살 수 있다

 

 개혁정치의 이상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낙향하고 10년쯤의 세월이 지나 정자를 지어 그 정자를 선비들의 토론장으로 사용했고, 그들의 뜻을 모은 ‘금강결사’의 마음을 담아 ‘금사정’(錦社亭)이라 이름 붙이고 정자 앞에 기념식수를 합니다. 그들이 고른 나무는 서상(瑞祥) 나무인 동백나무였습니다.

 세상이 변한다 하더라도 사철 내내 푸른 동백나무의 잎처럼 뜻을 잃지 말자는 다짐이었다고 합니다.

 좌절을 맛본 그들이였기에 붉디붉은 핏빛 한이 언젠가는 동백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 심고 길렀습니다.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금강결사 11명 선비들의 꿈은 펼쳐지지 못했지만 그 정신은 동백나무에 오롯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옛 선비들의 꿈을 오늘의 우리들이 이루고 있습니다.

 옛말에 ‘동백숲에 가면 8000년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대설이 다가오는 올겨울 빨간꽃에 흰눈을 살포시 덮고 있는 동백의 황홀경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심이 어떠신지요?

김세진 <광주생명의숲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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