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안개 속

▲ 영화 ‘미스트’.

 - 2007년 / 125분 / 감독 : 프랭크 다라몬트 / 토마스 제인(데이빗 드레이턴 역), 마샤 게이 하든(카모디 부인 역), 로리 홀든(아만다 던프리 역) 등

 

 스티븐 킹 열풍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분 적이 있다. 90년대였던 것 같다. 열풍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추리·SF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스트’를 보고나서 스티븐 킹에 대한 이해에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가졌다. 영화를 통해 보여준, 세상을 읽는 인식에서 그의 작품세계가 특정 장르에 갇혀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이 갖고 있던 장르적 매력에 빠져있던 이들에게는 오히려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에 대한 감상에서 기대와는 달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한 때의 열풍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안개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안개는 시선을 막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지만,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세상을 읽는다. 안개는 세상을 읽지 못하게 한다. 열풍도 마찬가지다. 하나를 본다는 것이 좀 다를 뿐, 하나의 방향으로 달려갈 때, 시선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결국 그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안개에 갇힌다.

 ‘안개’로 시인으로서의 이력을 시작한 기형도는 안개를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안개> 중에서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갇혀있는 안개의 정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심지어는 안개를 인식하지 조차 못한다.

 호숫가 마을 롱레이크에 폭풍이 몰아치고 전기가 끊긴다. 뒤이어 기이한 안개가 몰려온다. 데이빗은 집을 수리하기 위해 아들 빌리, 옆집에 사는 변호사와 함께 다운타운의 마켓으로 향하던 중 군인들의 이동을 목격하고 이상한 느낌을 갖는다.

 쇼핑을 하던 중 한 노인이 피를 흘리며, “안개 속에 무언가가 있다!”고 마트 안으로 피신해 온다. 밖은 이미 짙은 안개로 뒤덮여있다. 마트 안의 주민들은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낯선 괴생물체의 공격을 받는다. 마트 안은 혼란에 빠지고, 자신들이 맞닥뜨린 안개와 그 속에 숨겨진 것들에 대한 해석으로 충돌한다. 죽음이 보이는 극단적인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극단적이고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게 만든다. 괴생물체에 대항해 싸우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이들도 있다.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종교적 해석을 하여 사람들을 겁박하고 자신의 이념을 관철시키려는 여인도 등장한다. 다른 이들처럼 데이빗 또한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더 많은 괴생물체들이 나타난다. 마트도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데이빗은 결국 아들 등과 함께 차를 타고 마트를 나서지만 결국 차가 멎는 상황을 맞게 된다. 세상이 종말을 맞게 되었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자살을 선택한다. 아들을 비롯한 일행을 한 명씩 총으로 사살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데이빗 앞에 갑자기 군인들과 안개 속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나타난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데이빗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사람들이 군용차를 타고 지나친다. 데이빗은 절규한다.

 새로운 세계는 언제나 안개처럼 다가온다. 겪어보지 않았으므로 정체를 알 수 없다. 어떤 성격을 가진 세계인지 알 수 없다. 새로운 세계를 대하는 첫 대응이 적대적인 것은 생존 본능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미지의 세계는 우호적일 수도, 적대적일 수도 있다. 적대적인 경우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판단 착오는 곧 죽음이다. 잉카의 아타왈타(재위 1525∼1533) 황제가 그런 실수를 했다. 우호적이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도 그런 일을 당했다.

 그러나 ‘미스트’처럼 다른 세계와의 조우에서만 그런 양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 간의 만남도 언제나 안개를 만나는 것과 같다. 서로 다른 세대의 만남도 그렇다. 협소하게는 개인과 개인의 만남도 그렇다. 다만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범주화된 경우의 수, 즉 알고리즘들에 대한 지식을 좀 갖고 대처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을 먼저 산 이들이 모든 것을 환히 밝혀놓지는 못한다. 후세들이 걸어갈 길 앞에 작은 등 하나를 켜놓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세대들도 허다하다. 세상은 그렇게 곳곳이 안개에 덮여 있다. 환히 밝혀 놓았던 것들도 언젠가는 무관심 속에 안개에 갇히게 된다. 그 때문에 대중을 현혹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안개를 끄집어낸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안개를 만드는 이들보다는 좀 더 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데이빗처럼 때늦은 절규를 하게 될 것이다.

천세진 <시인>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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