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야채·싱싱한 생선을 그날그날
바싹 튀긴 칠게·데친 생두릅 `제철’

 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한낮 오후, ‘월가’ 의 간판은 알록달록 거리고 있었다. 초승달 아래로 갯가의 한적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배를 닫는 사공의 손길이 분주하다. 바다로 향하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숨결이 다한 거무튀튀한 팽목나무의 평상에는 빈 막걸리 통이 어우렁더우렁 쌓여있다. 물이 흥건한 확독과 큼지막한 고무 ‘다라이’에는 마음을 다스린다는 수선화와 훤칠하게 자란 부들이 꼭꼭 채워져 있었다.

 창가에 주렁주렁 목각인형이 어른거리는 식당 문턱에 들어섰다. 희끄무레한 머리와 눈매가 인상적인 쥔장이 부스스 자리에 일어나 열무김치, 콩나물과 미나리 무침, 고사리와 채지를 식탁위에 올려놓는다. 머리를 뽀글뽀글 늘어뜨린 청바지 차림의 가게 주인은 최근 메뉴판을 치웠다는 말과 함께 오래된 사기대접과 막걸리 주전자를 턱하고 내민다.

 “예전 바깥양반이 장성 어느 부농집에서 일을 했는데, 그 집에서 나온 그릇이요, 아마도 60~70년대에 썼던 것이라고 하는데, 몇 소쿠리로 가득 가지고 온게지”

 가죽나무 탁자에 척하고 달라붙어 미끈하게 빠진 막걸리 잔으로 한동안 시선이 가는 동안, 시원한 열무김치의 아삭거림과 미나리 무침의 사각거림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어레미 아래에는 주둥이를 내민 조구새끼들이 뭉텅하고 쭈뼛거리며 악하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국수 가락을 한껏 뽑아 악다구니에 밀어 넣고 있는 부채그림에는 부채 살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여기저기 걸려있는 자화상과 물고기, 꽃과 나비, 눅눅한 벽지와 사람냄새 나는 그림들은 이 집 모양새가 지난한 이력들로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진도가 고향이지라, 양푼점 하는 언니네 들락거리다 남편을 만났어. 그림 그리는 남편 따라 중국에도 3년이나 있었지. 담양서 식당일을 배워, 산수동에서 오픈하고 여기에 자리 잡은 지는 10년이 가차우요. 예술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이 특별할 게 뭐 있소. 그냥저냥 소일거리로 허면서 밥이나 먹으면 되지. 시간나면 바느질하고, 신문보고, 책 읽고 그러지 뭐.”

 꼭두 아래에 눕혀져 있는 막사발 무덤과 망둥이 두 마리가 입질을 해대는 선반 사이로 쥔장의 서너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뚝배기에 담긴 칠게 튀김과 푸릇푸릇한 두릅이 나왔다. 봄날 바닷가 갯벌에 뽈~뽈 기어 다니는 칠게는 날씨가 더워지면 껍질이 딱딱해져 식감이 떨어지니, 지금이 딱 먹기 좋다. 노릇노릇 바삭바삭 튀겨져 뽀삭~뽀삭 소리를 낸다. 생두릅을 물커지게 살짝 데쳐서 간을 한 두릅은 봄철 풋나물 중에서 으뜸이라고 하는데, 그 맛이 보여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초고추장이요? 생강과 설탕조금 그리고 막걸리 식초를 넣어서 만들지요. 식초는 6개월 이상 발효시키는 것을 쓰지라. 열무김치 맛있제. 식은 밥에 풋고추를 갈아서, 생강·마늘·양파가 들어가요. 내 음식은 어머니가 계시는 친정에서 직접 담은 간장과 고추장, 된장으로 양념하고 간을 대요. 재료는 그날그날 시장 좌판에서 제철야채와 싱싱한 생선 등을 사서 허요.”

 초승달이 걸쳐있는 소나무와 매화나무 뜨락에 부는 바람을 타고, 권커니 잣거니 놀고 있는 그림 아래에서는 막걸리 주전자의 뚜껑 여닫는 소리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쥔장이 제일 좋아한다는 동백꽃은 시퍼런 산야에 붉은 빛이 뚝뚝 떨어져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서울 낙원동 작업실에 있을 때 그렸다는 ‘검은 새의 노래를 듣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칙칙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막걸리 한 잔을 비웠다. 쪽방처럼 보이는 조그만 방 입구에는 커튼이 가려져 있는데, 연꽃과 올챙이, 연밥을 묵고 있는 새가 그려져 있다.

 “그 쪽은 주로 단골들이 두런두런 얘기도 하고, 편안하게 술자리를 갖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나올 때는 다들 거나하게 취해서 나오는 곳이요. 우리 가게는 젊은 사람들이 많지. 오래전 산수동에서 어느 화가의 뒤풀이를 했는데, 거나하게 취한 웬 노친네가 등허리로 손이 쑥하고 올라오는 데, 깜짝 놀랐지. 그 뒤로 인상도 좀 고약해 뵈고, 손님들도 가려서 받아서 그런지, 아무튼 수작질 거는 술꾼들은 얼씬도 못하지, 얄짤없어.”

 무·양파·생강·마늘·대파·매운 고추가 들어가고, 집 간장으로 간을 맞춘 명태국이 나왔다. 조선간장의 은은한 풍미가 느껴지고, 반 건조된 동태의 씹는 맛이 꼭 옛날 맛이다. 밥은 찰지면서 고들고들해서 시원한 국물에 그냥 말아 먹어도 숙취가 금방 풀리겠다.

 식당 벽면 여기저기 걸려있는 매화점 가방이 형형색색이다. 밑그림 따라 한 올 한 올 새겨진 바느질이 정겹다. 울퉁불퉁 수를 놓은 색실을 따라가면 꽃과 나비, 물고기와 새를 볼 수 있고, 쥔장의 서글서글한 눈을 만나서 음식에 취하고, 찌그러진 주전자를 한껏 안을 수 있다. 전화가 울린다. 광주 비엔날레 관계자들이 온단다. 월가에 오면 날숨으로 확 다가오는 토종 냄새와 쥔장 내외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닳아빠진 사발그릇에 달달거리는 막걸리 소리가 들리고, 오지그릇과 한 몸이 되어 나오는 음식 맛이 썩 그럴듯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월가에 오면 식당 문 자리에 걸린 망태 속의 애틋하고 애달픈 글귀는 못 볼 것이다. 아버지의 폼 잡은 낚시 솜씨와 그 아들의 글 솜씨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 그 어미의 끈끈하고 속 깊은 애정사가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월가에 가면 입구에서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가죽나무와 참나무로 빚은 탁자위에 뺨을 대고 침을 흘려봐야 한다. 커튼을 열고 봉놋방에 들어가 숙취로 가슴을 열고 머리를 말끔히 비워보는 경험을 해보시기 바란다.

▶ 차림 : 애호박 6000원, 칠게튀김 15,000원, 명태탕 20,000원, 수육 20,000원, 두릅전 20,000원, 주류 3,000원, 기타 각종 제철요리(탕류, 찌개류 등) 20,000원

▶ 주소 : 광주 동구 동계천로 84(장동 39-23/전남여고 뒤편 복개도로)

▶ 연락처 : 062)227-2141

장원익(남도향토음식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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