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남마을 당산목인 말채나무. 뿌리 주변을 덮고 있는 콘크리트를 제거했지만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뿌리호흡을 할 수 없어 서서히 고사되고 있다.

 

 입하(立夏)를 상징하는 이팝나무꽃이 피기 시작하여 소만(小滿)을 전후로 온 산과 들에는 흰꽃들의 잔치가 시작됩니다.

 작은 것으로 가득 찬 절기인 소만에 흰꽃들이 많이 피면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란 의미지요. 진한 향기와 더불어 여린순을 내주는 찔레꽃도 있고. 가을 붉은 열매를 유난히 좋아하기에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꾀꼬리와 한철을 보낼 수 있는 층층나무도 있습니다.

 이 나무 한 그루만 심어놓으면 지네들이 오지 못한다는 말채나무도 있습니다. 말채나무는 나뭇잎과 꽃이 층층나무와 비슷해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광주지역에서 마을 당산나무로는 딱 한 그루만 있습니다. 귀한 노거수 나무인 것입니다.

 마을에 고인돌 2기가 지금도 자리하고 있는 동구 월남동 녹두밭 웃머리 마을인 ‘주남마을’. 이 마을은 5·18민주항쟁 사적14호로 5·18민주항쟁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입니다. 36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1980년 5월23일 마을 앞에서 벌어진 5·18민주항쟁 당시의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말채나무(흉고:265cm, 수령: 약 150년 정도) 노거수(老巨樹)가 우리들의 무지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단한 삶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뿌리 주변 콘크리트 공사 후 고사 증세 

 말채나무는 이 마을 입구에서 150여 년의 삶의 기록을 나이테에 저장해 왔습니다. 마을 당산나무로 마을 주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던 노거수를 오월의 정신으로 다시 살려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는 노거수의 가장 큰 기능은 마을 공동체 생활의 필수인 소통(疏通) 기능입니다. 더불어 공동체 생활의 주 무대이고, 더불어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의 곳간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우리민족의 고유 명절과 주요 절기인 대보름·단오·백중날에는 이 곳간문을 열어 젖히고서 마을 대동잔치에 필요한 농악으로 주민들과 하나가 되었지요.

 하지만 주남마을의 말채나무는 마을 주민들의 애정 어린 보살핌에도 불구, 수년 전 뿌리 주변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포장공사를 한 후부터 급격하게 고사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필자가 소속돼 있는 ‘광주생명의숲’에서 3월초와 5월초 현장조사를 통해 말채나무의 생육상태를 전문가와 함께 진단한 결과 지상부위 2m이상 목질부는 이미 고사가 진행되어 버섯이 자라고 있어 외과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2m 이하 부분도 지면 부위 한 쪽 수피만 살아있기에 그 수피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는 일부 맹아 가지만이 힘겨운 생장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광주생명의숲에서 주남마을 어르신들의 의견을 받아 말채나무 후계목을 식재하고자 준비 중에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옛 전남도의회 앞 회화나무처럼 지금 말채나무와 DNA가 같은 후계목을 찾아 식재하는 방법이겠지요. 그래서 150여년 주남마을의 역사를 살려내자는 의미입니다.

 

후손에 물려줄 공공자산…후계목 고민을 

 반가운 소식은 후계목 식재에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 긍정적이고, 아울러 후계목이라고 확신하는 어린 묘목을 필자가 발견해 확인을 거친 후 마을 주민에게 전달해드렸고 정성껏 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의 의견이 정해지면 주남마을과 광주생명의숲이 공동으로 후계목 식재 행사를 진행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말채나무(층층나무과:Cornus walteri Wangerin)는 잎 떨어지는 큰 키 나무로 전국에서 잘 자라며 층층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봄이 되어 한창 물이 오를 때 새로 나온 가느다란 가지가 말채찍으로 쓰기에 적당해서 말채나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며, 하얀꽃은 밀원으로 우수한 자원이고, 가을에 익은 열매는 새들의 중요한 먹이가 되지요.

 주남마을 말채나무는 동네 사람들만의 나무가 아닙니다. 1980년 5·18민주항쟁의 정중앙에서 국가폭력의 잔혹함을 지켜보았기에 이미 광주 시민들의 나무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후손들에게 오롯이 물려주어야 할 공공의 재산으로 관리를 해야 합니다. 말채나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만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채나무가 살아가는 동안 80년 5월은 영원 무궁하게 후손들에게 전해질 것 입니다. 말채나무의 고사는 광주시민들의 마음속에서 80년 5월을 지워버리는 일과 같습니다.

글·사진=김세진 <광주생명의숲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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