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상처, 그리고 극복

▲ 다친 콧등을 자연 치유해 `비뚤이’가 된 우치동물원 과나코.
 나도 동물들과 상대하면서 긁히고, 차이고, 넘어지고, 물리고 하면서 여러 상흔이 남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큰 아픔 없이 잘 살아온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소 발에 채였는데 제대로 뼈에 맞으면 뼈가 부러지겠지만 계속 정강이나 근육 쪽에 맞아서 괜찮았다. 그런 곳에 맞으면 처음엔 얼얼하고 그 다음에 무지 아프고 나중에 파란 멍이 들었다 풀리고 딱딱해지고 한달쯤 지나 나을 무렵에 무척 가렵다. 최근에 백곰 아픈 데를 가까이 찍어서 보려고 카메라를 들고 백곰사 앞에 두고 찍다가 백곰이 눈앞에 온 줄도 모르고 놀라서 함정으로 뛰어내렸는데 다리가 접질러져서 한 달 동안 깁스 신세를 졌다. 나에게 크고 작은 그런 일들은 왕왕 일어나기에 깁스나 가벼운 봉합 정도는 그냥 셀프로 처리한다. 때론 아픈 부위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면서 은근 생생한 치료법을 익히기도 한다. 그래서 수의사일지도 모른다.

 나보다도 동물들은 훨씬 더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산다. 홍부리 황새 한 마리는 위쪽 부리가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밤새 잘려나가 할 수 없이 아래쪽 부리를 잘라 균형을 맞춰 줬다. 또 한 마리는 부화할 때부터 한쪽 발목이 아예 없었다. 처음엔 바라보기 안타까워서 안락사 아니면 다리에 보정물을 해줄까 볼 때마다 고민 고민만 했다. 하지만 그 황새는 스스로 일어섰다. 아픈 다리 끝에 군살이 박혀 이제는 거의 정상적으로 활동을 한다. 날개가 몸을 가볍게 해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휠체어 타는 개, 인공 꼬리지느러미를 단 돌고래, 의족 단 코끼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보정물을 단 동물들도 있다. 내 여건으론 그렇게 해 줄 수 없어 늘 그런 장애 동물들을 보면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의 무던하고 값싼 치료를 받아주고 견뎌주어 정말 고맙다.

 미국 너구리 라쿤도 동료와 싸워 아래턱 한쪽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턱뼈까지 깨져서 뼈를 붙이는 건 나에겐 너무 어려운 수술이었다. 주변에 사육사들도 이구동성으로 ‘죽겠지요?’하고 포기 단계였다. 그만큼 상처가 깊었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 하고 일단 턱뼈는 포기하고 살만 알뜰하게 봉합해 주었다. 그렇게 하고보니 보기엔 정상적으로 보였다. 수술하고 깨어나니 상태도 말짱했다. 다음엔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게 가장 관건이었는데 연한 것만 골라서 그것도 안 되면 물에 씻어서 불려서 먹었다. 생명력도 강하고 영리한 녀석이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단 혀가 가끔 그 뼈 없는 데로 나오는 게 탈이었다. 관람객들이 가끔 “어머! 혀 내민 것 봐 귀여워!” 할 때 난 가슴이 찔린다.

 과나코 수컷 한 마리는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옆에 수컷과 서로 싸우다 코를 물렸다. 아침에 보니 코 한쪽 연한 피부가 짝 벌여져 있었다. 아! 저 정도면, 마취해서 꿰매는 것보다 그냥 놔두기로 했다. 마취도 잘 안되고 이 정도 상처는 잘 아물기 때문이다. 한 일주일쯤 지나 다시 코를 보니 상처는 아물고 나아가긴 하는데 어째 좀 이상하게 보였다. 코가 약간 비뚤어져 보였다. 상처가 아물면서 코를 좀 변형시킨 것이다. 비뚤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그래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나이처럼 멋지게 보이기도 한다.

 시베리아 호랑이가 자꾸 안 움직이고 걸을 때 자세가 점점 이상해졌다. 마치 앞에 뭔가 있는 듯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 딛는 것이었다. 그를 옮길 일이 생겨 마취를 했다. 그런데 그때야 비로소 원인을 알았다. 원래 호랑이들은 발톱이 퇴축, 그러니까 즉 걸을 때 발톱 주머니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고장이 난 상태였고 계속 자란 발톱이 살을 모두 파고들고 있었다. 이러니 아파서 못 걷고 안 움직였던 것이다. 가볍게 옮기기만 하려 하다가 발톱 10개를 모두 자르고 파내는 수술까지 했다. 지금은 아주 잘 걷는다. 하지만 여전히 고장이 진행 중이니 일 년쯤 후에 다시 조심스럽게 걷기시작하면 또 발톱 미용수술을 해줘야 할 듯하다.

최종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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