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메시지, 투박한 전달

 대중들이 함께 느끼는 분노를 공분(公憤)이라고 한다.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다룬 ‘도가니’ 이후 한국 영화는, 공분을 영화의 에너지로 삼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공평하지 못해서 분노할 수밖에 없는 사건을 담은 영화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대한민국이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증표이리라.

 ‘재심’의 시작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사건을 출발점으로 했다. 우선 그 사건의 자초지종을 살펴보면 이렇다. 최 씨(당시 15세)는 2000년 8월 10일 새벽, 전북 익산시 약촌 오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택시기사 유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의 최초 목격자였던 최 씨는 참고인 조사에서 “현장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으나 경찰은 최 씨를 범인으로 몰았다. 이로 인해 최 씨는 살인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이후 징역 10년을 살고 출소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것도 억울한데 근로복지공단이 택시기사 측에 지급한 보험금의 원금에 이자를 더한 1억7000만 원을 갚으라고 청구한 것이었다.

 ‘또 하나의 약속’으로 악덕기업 ‘삼성’을 고발한 적이 있었던 김태윤 감독은, 이 사건을 접하며 다시 한번 공분을 자신의 영화적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렇게 범인을 찾기 위해 목격 진술을 했지만, 경찰의 강압수사로 살인 누명을 쓴 억울한 사내의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분명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최 씨의 이야기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김태윤 감독은 최 씨의 사연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몰고 가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공분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도록 했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정의가 실종된 부조리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데 주력한다. 그 불합리한 세상과 부딪히는 인물은, 궁지에 몰려 있는 세속적인 변호사인 준영(정우)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불신하는 현우(강하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른 배경과 목적을 가진 채 만난다. 현우는 누명을 벗고자 그리고 준영은 누명을 벗겨서 명예를 얻고자 서로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에너지는 두 사람의 희망사항이 계속해서 좌절되는 것에서 발생한다.

 그러니까 조폭처럼 피의자를 구타하고 거짓자백을 강요했던 형사인 백철기(한재영)는 자신의 잘못을 덮고자 날뛰고, 제대로 사건을 심사하지 않은 채 15년형을 선고한 검사(김영재)는 자신의 오판을 덮으려 한다. 그리고 준영의 동료 변호사인 창환(이동휘)은 검사와 거래한 후 재심을 방해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폭력의 공모다. 그러니까 이들은 진범을 잡고도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협잡하는 타락한 법 집행자들인 것이다. 이것이 두렵고도 무서운 것은 이와 같은 상황들이 현실에서도 부지기수임을 상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목격자를 살인자로 둔갑시켰던 공권력의 부패와 안일한 태도를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임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심’은 정의를 외치고 있는 방식이 지나치게 선정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공분을 심어 주겠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한 선전영화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 영화는 극적인 전개에 있어서도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대목을 노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재심’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훌륭하나 이를 전하는 방식이 자극적이고 투박하다는 말이다.

 한국영화는 앞으로도 공분을 영화의 에너지로 삼는 영화가 계속해서 나올 공산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은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고, 앞으로도 금방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란다. 이후에 만들어지게 될 작품들에서는 공분이 세련된 영화적 화법으로 담겨지기를.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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