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반성?

 ‘엑스맨’ 시리즈의 첫 시작은 2000년이었다. 이 시리즈에서 휴 잭맨은 엑스맨(X-Men)의 멤버 중 한 명인 ‘울버린’을 맡은 이후 17년 동안 쉼 없는 활약을 펼쳤다. 그렇게 그는 쉰 살의 나이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휴 잭맨이 악을 제거하고 영웅의 풍모를 뽐내기에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로건’은, 휴 잭맨의 ‘울버린’ 은퇴 선언을 공식화하는 이야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런 이유로 관객들이 만나게 되는 울버린은 늙고 기력이 없으며 흉터투성이의 몸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상처를 급속도로 치유하는 특유의 ‘힐링팩터’ 능력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러니까 수많은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엑스맨들의 선봉에 섰던 울버린은, 이제 인간들의 추적을 피해 일행의 안위를 챙기기 급급한 모습인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로건’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울버린’이 돌연변이의 이름이라면, ‘로건’은 그의 인간 본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로건’은 ‘초월적 존재’로서의 울버린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조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로서 ‘로건’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가 된다.

 ‘엑스맨’시리즈 중 한 편인 ‘더 울버린’(2013)을 만들어 관객들로부터 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 제임스 맨골드는, ‘로건’에서 자신이 장점을 보였던 서부극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니까 21세기형 서부극으로 평가받은 ‘3:10 투 유마’(2008)의 연출자답게 ‘로건’은 서부극에 대한 애정이 영화 속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추적극이 된다.

 황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 말고도 감독은 서부극의 고전인 두 편의 영화를 호출한다. 한 편은 ‘셰인’(1953)이고, 다른 한 편은 ‘용서 받지 못한 자’(1992)이다. 이렇게 두 편의 영화를 호출한 것은, 로건으로 하여금 자신이 울버린 시절에 세상과 돌연변이들을 위한 다는 명분아래 자행했던 폭력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서이다. 악당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악당을 살해한 후 손에 묻은 피를 부담스러워 하는 셰인(앨런 래드)의 고뇌가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용서 받지 못한 자’를 통해 서부 총잡이의 역사가 멋진 영웅들의 결투가 아니라, 비열한 인간들의 몸부림이었음을 까발리며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구축했던 신화를 성찰했듯이, ‘로건’ 역시 슈퍼히어로물이 능력 있고 매력 있는 영웅들의 한바탕 소란임을 토로하기 위해, 부러 늙고 쇠락한 영웅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로건(휴 잭맨)에게서 ‘용서받지 못한 자’의 병들고 지친 총잡이 윌리엄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상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에 대한 반성은 액션 연출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치장한 화면 대신에, 육체와 육체가 부딪히고, 신체가 훼손되는 아날로그적 액션을 고집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로건’은, 분명 할리우드가 만들어 내고 있는 숱한 슈퍼히어로 영화들에 대해 반성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의견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슈퍼히어로들의 활약을 막지는 못한다.

 당장 이 영화만 해도 그렇다. 손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클로와 힐링팩터 능력까지, 로건을 쏙 빼닮은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의 활약을 공들여 연출하기 때문이다. 로라는 소녀의 감성을 간직한 살인병기로서 강인한 카리스마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특히, 자신을 사냥하러 온 사냥꾼의 목을 베어 관객들을 향해 던지는 장면의 연출은 압권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울버린(로건)의 퇴장과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등장을 병행시키며 시리즈는 계속될 것임을 선언한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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