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김연아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고 그 두 달 뒤 팬 미팅을 한다. 이때 에스비에스 ‘한밤의 TV연예’에서 그미를 만나 인터뷰하는데, 기자가 컨디션 걱정을 하니까 이렇게 대답한다.

 “전 괜찮아요. 안 괜찮아도 괜찮아요.”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먹먹했다. 김연아의 목소리는 떨렸고, 깊은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괜찮다고 했지만 전혀 괜찮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때 그미의 나이 스물하나. 비인기 종목이고, 연습할 스케이트장이 없어 이곳저곳을 찌웃거려야 했고, 변변한 스케이트 하나 없이 시작했다. 일본 스케이트 전문매장에 갔더니 매장 장인은 김연아의 스케이트 날을 보고 아이스하키 선수 스케이트처럼 날을 갈았다고 일러준다. 물론 스케이트도 발에 잘 맞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김연아는 어머니와 함께 헤쳐 나갔다. 대회에 나가 잘했는데 점수가 적게 나와도 괜찮아야 했다. 빙상연맹도 정부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랬다. 김연아는 언제나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 했던 것이다.

 화가 김환영이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 ‘종이밥’ ‘나비를 잡는 아버지’ ‘빼떼기’를 그린 화가이다. 그가 경기 가평에서 충남 보령 남십리로 이사를 왔다. 술을 마시다가 대뜸 이랬다. “보령에 온 지 세 해가 넘어가는데, 아직도 모르겠더라고. 그게 뭐냐면 ‘괜찮아유, 댔시유’야. 이 말만 정확히 알아들으면 나도 충청도 사람 다 되는 건데.” 정말 괜찮아서 “괜찮아유.” “댔시유.”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조금은 알 것도 같다고 했다. 그가 김연아의 말을 듣고 시 한 편을 썼다. 제목은 ‘스타’이다. “전 항상 괜찮아요 / 안 괜찮아도 괜찮아요.” 단 두 줄로 된 시다. 시 밑에 한마디를 달았다. “2010년 4월 ‘한밤의 TV연예’ 인터뷰 중 ‘피겨 왕’ 김연아가 한 말.”

 김환영이 김연아의 말을 듣고 우리 시대 스타의 아픔을 읽었다면 나는 그미의 ‘체념’을 읽었다. 김연아 같은 스타이든 아이돌이든 평범한 학생이든, 그들은 언제나 괜찮아야 한다.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 한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취직을 하기 전까지는.
김찬곤 <광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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