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신의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기사를 보면 ‘입장 발표’로 보도한 곳이 많다. 입장(立場)이란 말은 일본말 다찌바(たちば)를 한자로 적은 것으로, 우리 겨레가 100년쯤 쓴 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당면하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처지’이다. 지금은 처지뿐만 아니라 태도, 견해, 주장, 의견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아래는 이명박의 입장문이다. 신문사에서 보도한 입장문은 조금씩 차이가 있어 동영상을 보며 그가 말한 그대로 받아 적었다. 582자, 200자 원고지로 4.1장, 발표 시간은 3분 9초이다.

국민 여러분, 저는 매우 송구스럽고 참담스러운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나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서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국정수행에 임했습니다.?퇴임 후 지난 5년 동안 4대강 살리기와 자원외교, 제2롯데월드 등 여러 건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만, 저와 함께 일했던 많은 공직자들이 권력형 비리가 없었으므로 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낍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저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 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 달라, 하는 것이 저의 오늘의 입장입니다.?

자 끝으로, 평창올림픽을 어렵게 유치를 했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총 단합해서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뤄냄으로써 우리의 국격을 다시 한 번 높일 수 있는 그런 좋은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입장문에 대해 갖가지 보도와 평가가 있었지만,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그가 대체 누구를 보고 이 입장문을 읽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이 입장문은 5100만 우리 국민의 눈을 맞추면서 쓴 글이 아니다.

나는 박근혜가 작년에 세 번에 걸쳐 발표한 담화문을 모두 들어 봤다.

적어도 박근혜는 5100만 국민과 눈을 맞추며 감성에 호소했다.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명박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도둑이나 강도를 잡는, 이 정의로운 일을 ‘정치보복’이라 여기는 23퍼센트 사람들만 보고 말했다. 그래서 이 기자회견은 애당초 실패다!

거의 다 보수층이 좋아하는 말이거나 잘 쓰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공”한 나라이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키겠다”,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보수를 궤멸시키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 “우리의 국격을 다시 한 번 높일 수 있는” 계기, 이런 말은 소위 우리의 ‘지도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늘 하는 말이다.

참고로, ‘참담스러운’은 틀린 말이고, ‘참담한’ 이렇게 써야 한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는 대통령 시절 내내 한결같이 23퍼센트만을 위한 정치를 한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이 가장 참기 힘든 말은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었던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데, 23퍼센트 보수층들도 그의 편이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은 부자가 되는 것을 ‘욕망’하지만, 눈앞에 있는 실재 부자는 언제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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