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 선물하고픈, 판타지

 봄이 되면 청산도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삭막한 삶에 지친 도시인들은 머나 먼 남도의 섬을 찾아가, 그곳에서 ‘느리게 걸으며’ 몸과 마음을 치유 받고자 하는 것이다. tvN의 <삼시세끼>가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농어촌을 찾은 인기인들이 특정기간 동안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해먹는 삼시세끼에 시청자들은 열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시인들은 찌든 삶의 정반대편에서 펼쳐지는 농어촌의 판타지를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의 삶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고향에 내려온다. 그리고 혜원은 그곳에서 1년을 산다. 그러나 혜원의 1년을 채우는 것은 고된 노동이 아니다. 그러니까 귀농을 해서 거친 농사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혜원에게 시골생활은 치유와 회복의 기능으로 작용한다. 이런 이유로 영화 속 농촌의 일상은 한가롭게 흘러간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결국 한 끼 먹고 살자고 하는 이유가 크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한 끼 한 끼가 건강한지는 의문이다. 영화 속의 혜원도 그렇다. 그녀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일했는데, 삼각 김밥이나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고, 어떤 날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다가 게워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혜원이 배고픈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고향집에 내려온 혜원은 제철에 나는 싱싱한 재료들로 맛난 음식을 해먹는다. 이런 이유로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이 음식재료를 준비하고 그 재료로 요리하는 과정을 공들여 담아낸다. 그러니까 <리틀 포레스트>의 또 다른 주인공은 ‘요리’다. 그 요리들의 면면은 각양각색이다. 이로 인해 관객들의 눈은 황홀해지고 귀는 맛있는 소리로 가득 찬다.

 그렇다고 <리틀 포레스트>가 혜원의 요리 솜씨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혜원의 주변에는 귀농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재하(류준열)가 있고, 고향 농협에 근무하면서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 은숙(진기주)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초등학교 동창들로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임순례 감독의 초기영화들인 <세 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속의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두 편의 영화에서 주류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단한 현실에 신음했던 인물들은, <리틀 포레스트>속에서 다시 부활한다. 도시에서의 삶에 힘겨워했던 혜원도 그렇고, 재하 역시 마찬가지다. 재하는 직장상사의 악담을 견디지 못하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귀농을 택함으로써 세상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임순례 감독은 우리 시대를 굴러가게 하는 체제가, 초식 인간들이 살아가기에는 벅찬 곳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편지 한 장을 남겨두고 떠난 엄마(문소리)와 혜원의 과거 장면들은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이 된다. 혜원은 엄마가 만드는 요리들을 보고 자랐고, 그렇게 엄마가 만들었던 요리를 복기하면서 차츰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삶의 지혜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가령, “추운 겨울을 버티고 이겨내야 진짜 맛있는 곶감이 되거든!”과 같은 대사가 그렇다. 이 말은 고생스럽고 지루한 시간을 견딘 후에야 희망이 찾아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혜원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간 엄마를 원망했지만, 제2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찾아 나선 엄마를 이해하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는 낙원이미지로서의 농촌을 제시하며 팍팍한 하루하루를 사는 관객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했다. 그러니까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관객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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