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수기와 더수구니

▲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판촌 2구 고마 마을 이향례 할머니.
2016년 광주대학교 백애송 교수와 나주 지역 설화를 조사했다. 찾아갈 마을을 고를 때 딱히 기준이랄 것은 없다. 마을 이름이 특이한 곳, 들판에 있는 마을보다는 산 아래 외진 곳이 기준이라면 기준이다. 그날 들른 마을은 다도면 판촌리 고마 마을이다. 마을 이름 ‘고마’에 끌렸다. 마을 동쪽으로는 대초천 너머 남평 우산리 문무 마을이 있고, 남쪽으로 미러리 들판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다도댐 본 댐이 나온다. 북쪽으로는 행군재를 넘어 남평면 오계리로 갈 수 있다.

‘고마’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백이숙제가 화순 운주사를 거쳐 오다가 마을 서쪽 산봉우리를 보니 말 모양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백이숙제는 “저 봐라, 산봉우리 바위가 신기하게도 꼭 너처럼 생겼구나!” 하면서 말 목을 다독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두드릴고(叩)’에 ‘말마(馬)’ 자를 써서 고마 마을이 되었다.

마을 들머리에서 바라보면 느티나무가 마을 앞을 감싸고 있다. 족히 수백 년은 되어 보인다. 원래 마을에는 열 당석(당산)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느티나무를 당산으로 모시고 있다. 고마 마을에서 이향례(81)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중과 과부’, ‘소금장시와 과부’, ‘좋나!’, ‘할머니와 청년’, ‘서모는 무섭다’, ‘눈으로 점을 치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뒤 세 이야기는 구비문학대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할머니가 이야기를 들려주다 샛길로 빠지면서 이랬다.

“있어도 되부리고 놈 무시하고 깔뭉기는 사람은……, 못써. 그러면 못써. 그런게 미운 사람 떡 한나 더 주고 또 미운 놈 더수기 한 번 더 따둡가려 주고, 그래라고 다 옛날 어른들이……, 절에, 거시기 저, 하나님 믿으러 가면 목사님도 다 그런 말씀 해주시고 글드마.”

옳으신 말씀이다. 나는 여기서 “미운 사람 떡 한나 더 주고 또 미운 놈 더수기 한 번 더 따둡가려 주고” 이 말씀이 확 다가왔다. 그런데 사실 또 이게 마음같이 잘 안 되는 게 세상일이다. 국어사전에서 ‘더수기’를 찾아보면 ‘뒷덜미의 옛말’이라 나와 있다. ‘뒷덜미’를 찾아보니 ‘목덜미 아래 양 어깻죽지 사이’다. 나는 어머니가 더수기가 아프다, 할 때면 ‘등허리’가 쑤시구나, 짐작하고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등을 두드려 드렸다. 전라도에서 더수기는 보통 이렇게 등허리를 말한다.

그런데 더수기와 더불어 ‘더수구니’가 있다.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에 더수구니가 나온다. “그는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허리를 바로 펴지 못하고 상반신을 구부리고 더수구니 사이로 고개를 움츠려 턱 끝을 쳐들어 장개동을 쳐다보며 말했다.” 더수구니를 알맞게 쓴 대목이다. ‘더수구니’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뒷덜미의 낮춤말’이라 나와 있다. ‘구니’가 붙은 ‘사타구니’를 찾아보니 ‘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한다. ‘구니’가 붙는 말은 대개 대상에 대해 말하는 이의 태도가 들어 있다. 치룽구니(어리석어 쓸모가 없는 사람), 발록구니(하는 일 없이 놀면서 돌아다니는 사람), 조방꾸니(오입판에서 일을 주선하고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 같은 말을 들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더수구니와 사타구니가 낮춤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더수기는 아프고 쑤셔도 스스로 긁을 수도 주무를 수도 없는 곳이다. 샅이 가려우면 꼴마리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긁어야 하고, 눈으로 보려면 바지를 내리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옹삭하다. 그래서 그 부위에 대해 말하는 이의 감정과 태도가 들어간 말이 아닐까 싶다. 옹삭한 곳에 대한 투덜거림이라고나 할까.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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