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관한 이야기2
나는 그 이야기를 불면증에 대한 은유 또는 알레고리로 썼어요. 나는 오랫동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무한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미쳐 버릴 거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를 쓰고 난 뒤에는 잘 잘 수 있었어요.
-‘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마음산책) 139쪽
보르헤스는 단편소설집 ‘기교 Artificios’(1944) 서문에서도 이 작품을 일러 “불면에 대한 긴 메타포”라고 한다. 하지만 이뿐 더는 말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 작품을 꼼꼼히 읽어도 이 말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일단 그가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불면에 대한 은유’라고 했듯 이 작품은 ‘불면 그 자체’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무엇’은 무엇일까.
한 달 뒤 4월 보르헤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도 공개 인터뷰를 한다. 한 청중이 묻는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자전적인 작품인가요?” 보르헤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 맞아요. 그 작품은 불면증에 대한 은유로 쓴 거랍니다. 밤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게 생각나는군요. 나 자신에 대해 잊으려고, 내 방을 잊으려고, 방 바깥의 정원을 잊으려고, 가구를 잊으려고, 내 몸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완벽한 기억에 짓눌린 한 남자를 생각했지요.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 ‘기억의 천재 푸네스’라는 악몽을 썼어요.
-‘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마음산책) 161쪽
이 구절을 보면 보르헤스가 ‘불면증에 대한 은유’를 어떤 뜻으로 말했는지 조금 알 수 있다. 그는 이 짧은 소설에서 ‘잠을 못 이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의식’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뿐, 더는 알 수가 없다. 대체 그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다시 한 달 전 인터뷰로 돌아가 봐야 한다. 거기에 그 실마리가 있다.
1980년 3월 보르헤스는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어는 호르헤 오클랜더와 윌리스 반스톤이었다.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