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관한 이야기2

▲ ‘말하는 보르헤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민음사, 2018) 표지. 이 책 11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이 만든 다양한 도구 중에서 가장 놀랍고 굉장한 것은 당연히 책입니다. 그 나머지는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력을 확장한 것이며 전화는 목소리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쟁기와 칼은 팔을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다릅니다. 책은 기억과 상상을 확장한 것입니다.”
 (저번 호에 이어서 씁니다)

 1914년 아버지의 시력이 안 좋아져 더 이상 변호사 업무를 볼 수 없게 되자 식구들은 아버지 눈 치료를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7년 동안 유럽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오지만 시력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보르헤스 집안은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1935년 보르헤스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여름이 오자 지쳐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자살은 실패로 끝난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모티브는 이때의 불면증에서 왔을 것이다. 이태 뒤 1937년, 보르헤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미겔 카네 시립도서관에 사서로 취직한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나이였다. 그는 이 무렵 시력이 더 안 좋아진다. 1927년부터 여덟 번이나 눈 수술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이때 남의 눈을 피해 도서관 지하 책 창고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좋았는데 어두운 지하 창고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어 안 좋은 시력이 더 나빠졌다. 1946년 페론이 정권을 잡자 보르헤스는 반정부 선언문에 서명하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해고된다. 그로부터 6년 뒤 1955년 페론 정권이 무너지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만큼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국립도서관에는 책이 80만 권이나 되었지만 단 한 권도, 단 한 자도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그는 잠깐 집 밖을 나갈 때에도 책이 없으면 불안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그만큼 책을 좋아했다. 책이 없으면, 활자로 되어 있는 무언가가 손에 없으면 불안한 증세, 일종의 활자병이다. 그는 시력을 잃기 전에는 책을 읽고, 자신의 두 눈으로 본 것에 사로잡혀 살았다. 하지만 시력을 잃은 뒤로는 ‘기억 속’에서 산다고 말한다. 그는 묻는다. (도대체) “상상력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난 상상력이 기억과 망각 속에서 생겨난다고 봐요.” 그는 기억과 망각 속에서 상상력이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좋은 것보다는, 자신의 인생에서 충만한 일보다는 대체로 ‘상처로서의 기억’이 많다. 우리는 그 상처를 ‘망각’해야만 하루하루를 버텨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억은 왜곡되고, 뒤틀리고, 가공이 된다. 보통 사람과 달리 예술가는 상처로서의 기억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치유해 나간다. 그것은 어쩌면 망각하는 과정 속에서 동반하는 ‘반-기억’으로서의 상상력일 것이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푸네스는 어떤 것도 망각하지 못한다. 그의 기억은 스캐너와 같고, 호불호가 없다. 망각하는 과정도, 일체의 가공도 없다. 그래서 그의 기억 속에서는 상상력이 생겨날 수 없고, 소설도 예술도 태어날 수 없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말한다. “우린 이 두 가지 요소가 뒤섞인 상태를 지향해야”한다고. 그리고 예술가의 상상력은 그 기억과 망각 속에서 태어난다고 말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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